[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오월과 함께
입력 2011-05-01 17:51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시인 김영랑은 오월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청춘에 비유되는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이유는 온갖 자연만물이 뿜어내는 생동감과 화사함 때문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날마다 새로운 빛깔로 변하는 연록빛의 기운에서 생명의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 빛과 어두움의 양면성이 존재한다면, 오월의 빛은 시리고 어두운 겨울을 잘 이겨낸 결과이리라.
어쩌면 사람의 세상처럼 그들도 빛으로 존재하고 싶은 소망을 품고 숱한 고난의 날을 구도자의 자세로 인내하며 지혜롭게 견뎌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강인한 생명력과 의지를 보노라면 미물이라 여겨지는 것일지라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움이 터 오르기 시작한 모든 것에는 희망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므로. 그들은 외친다. 생명은 눈물겹도록 강인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돌보는 손길 하나 닿지 않았어도 곳곳에서 따사로운 웃음으로 피어나는 수많은 꽃들과 싱싱하게 부활한 연록의 잎들을 보면 참으로 그 수고로움이 신통방통하고 고맙고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어디 자연뿐이겠는가. 숱한 고난과 끝날 것 같지 않은 수고로움이 계속되는 삶의 여정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욥기의 말씀이 들린다. 가장 힘들 때 그분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온갖 어려움을 성숙하게 견뎌내고 일어선 사람에게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존재감과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청년과 같은 오월을 맞이하며 속절없이 쓸쓸했던 젊은 날의 오월을 되돌아본다. 가장 반짝거리고 싱그러워야 할 청춘기이지만 젊음을 담보로 무모한 도전을 선택하기도 했고, 고뇌와 번민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다. 끝내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한계 앞에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초록빛 소망을 품고 살았던 귀한 날들이기도 하다. 그 날들을 담담한 마음으로 회상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흐르며 속이 좀 여물기도 했고 마음의 여유로움도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들로 산으로 불러내며 그 자연의 힘으로 모든 것을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게 하는 오월은 진정 생명의 계절이다. 마음으로는 벌써 아카시아, 라일락 꽃내음이 봄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것 같다. “마음을 주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고, 들어도 들리지 아니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젊은 날의 어느 오월처럼 속 끓이지 않고 잔잔한 마음으로 오월과 가까이 교유하며 그 속에서 지금도 청춘이고 싶다.
보내고 싶지 않은 오월이 총총 사라진다 하더라도 허둥거리지 않을 수 있겠다. 언제든 ‘지금’이 내 인생에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한동안 소식 없이 지낸 이들에게 두루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오월이다. 잘 지내시죠? 힘내세요. 다 잘 될 거예요.
김세원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