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단막극장… 안톤 체호프의 ‘고백의 조건’
입력 2011-05-01 17:26
고전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게 마련. 최초라 할 만한 단막극 시리즈의 첫 공연으로 안톤 체호프가 선택된 건 그래서 현명하다 할 만하다. 러시아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인 그의 희곡 ‘곰’과 ‘청혼’이 ‘고백의 조건’이란 이름으로 서울 대학로 스튜디오 76극장에서 지난 22일부터 7월 10일까지 공연 중이다.
◇한국 최초의 ‘단막극장’=단막극은 1막 한 신(Scene)으로 이뤄진 연극을 말하며 통상 1시간을 넘지 않는다. 단막극이 전무하다시피 한 국내 상황에서 ‘단막극장’의 개관은 흔치 않은 시도. 영화와 대비되는 연극 관람의 특징은 관객들로 하여금 능동적인 해석과 관찰, 나아가 참여를 허용한다는 점일 텐데 소극장의 환경은 이런 미덕을 살리기에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있다. 제한된 무대에서 꾸며지는 단막극의 성패도 어떻게 연극의 여백을 잃지 않으면서 관객의 호응을 확보하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한 국내 연극 환경에서 단막극은 국내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다. 극 자체의 길이야 짧지만 한 막의 길이가 길고 무대 변화가 없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지기도 쉽다. 배우들의 동선과 연기, 조명 등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임팩트있는 전개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곰’과 ‘청혼’은 편당 45분. 대학로를 찾은 관객들은 단막극을 보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을까?
◇두 남자의 ‘고백의 조건’=‘곰’은 젊은 미망인에게 빚을 받으러 온 거친 지주가 외려 미망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는 내용의 희극. 다혈질의 지주는 돈을 갚지 않으려는 아름다운 미망인 뽀뽀바에게 결투를 신청했다가 그녀의 화끈한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청혼’은 이웃집 아가씨 나딸리아에게 프러포즈를 하러 온 소심한 젊은이의 고백 이야기로, 청혼하러 왔다가 혼인이 파탄이 날 정도의 말다툼을 벌이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희화화돼 나타났다. 각각의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은 세 명씩이다.
한 가지 에피소드, 많지 않은 캐릭터. 자칫 단조롭게 흐를 수 있었던 무대는 빠른 전개와 쉴 틈 없는 대사 덕에 역동성을 가지고 순식간에 지나간다. 현대인이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고백’이라는 화두를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두 남자의 관점에서 응시한 것도 흥미롭다.
군더더기를 덧붙이지 않고 최대한 간결하고 깔끔하게 연출됐다는 게 이 작품의 강점이다. 특히 ‘곰’은 최소한의 소품과 세트만으로도 균형 있는 무대를 보여준다. 배우들 역시 조명이나 사운드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손쉽게 코미디를 해낸다. 뛰어난 원작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두 편을 이어 보더라도 피로감은 들지 않는다.
두 작품이 연속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데다 영화 관람료와 같은 저렴한 티켓 값 덕택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연극을 비교해보는 일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고전극을 주로 연출해 온 극단 수레무대의 김태용 대표 연출작. ‘청혼’은 개그우먼 전영미의 연극무대 데뷔작으로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공연을 주관한 기획사 컬비스 측은 “앞으로도 ‘단막극장’은 짧은 시간에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단막극의 산실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최진석 김동곤 이인호 김재구 조재윤 정선아 오유진 김정난 전영미 김미나 박보경 등 출연.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