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승욱] 바렌츠 선장 이야기

입력 2011-05-01 18:02


부산저축은행 계열 5개 은행 PF 대출의 80%가 대주주의 개인사업에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은행 대주주들은 대출한도규정을 피하기 위해 임직원 친척 명의로 시행사를 만들어 불법대출을 받았다. 특혜 인출된 예금의 대부분도 이 대주주들의 차명계좌에서 빠져나간 것이었다.

영업정지 정보가 국회위원과 금융감독원 직원 등에 의해 유출되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농협 전산망 마비사태에서도 지도부는 책임공방만 했고, 저축은행 청문회도 부실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 사건으로 금융계의 신뢰성에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유럽 귀족들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귀족의 자격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해상무역이 부의 원천으로 인식되던 중상주의 시대에 상인들은 신뢰에 목숨을 걸었다. 그 결과 16세기에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덜란드는 17세기에 유럽의 패권국가가 되었다.

‘대국굴기’에 등장하는 바렌츠 선장 이야기를 소개한다. 1596년에 바렌츠 선장 일행은 북극해를 통해 극동지역으로 가는 신항로 개척에 나섰다. 이 항로는 빙하가 녹은 덕에 2009년에야 처음 열렸는데,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기존항로보다 7000㎞가 짧아 꿈의 항로로 불린다.

그런데 바렌츠 선장 일행은 16세기 말에 이 항로 통과를 시도했다. 그러나 빙하에 가로막혀 실패하고 되돌아가지도 못해 북극해에서 겨울을 나게 되었다.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바렌츠 선장을 비롯한 8명의 선원들이 죽었다. 위탁화물 목록에는 약품, 식료품, 옷가지가 있었지만 이들은 고객의 화물에는 일절 손대지 않았고, 8개월 후 작은 배로 옮겨 타고 빙하를 빠져나와 러시아 선박에 구조 될 때도 화물을 가져와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이로써 네덜란드 상인들은 목숨 걸고 신용을 지킨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것이 네덜란드 상인의 자부심이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 화물운송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자체 배 제작에 나선 네덜란드는 17세기에 전 유럽이 보유한 화물선의 절반을 보유하는 해상 강국이 되었다. 예일 대학의 월러스타인 교수는 근대 패권국가로 19세기의 영국, 20세기의 미국, 그리고 17세기의 네덜란드를 꼽았다.

개발독재기에 우리나라는 관치금융을 통해서 자금을 수혈했다. 금융실명제로 이중금리가 사라졌고 금융개방도 지나칠 만큼 이루어졌지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계의 선전에 비해서 금융계는 아직도 낙후성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이 경제의 뼈와 근육이라고 하면, 금융은 경제의 혈관이다. 육체에서 피가 돌지 못하면 세포가 살아날 수 없듯이 경제는 돈이 돌지 않으면 기업이 살아날 수 없다.

은행을 신뢰하지 못하면 돈이 돌지 못하고, 경제의 각종 패러미터가 작동할 수 없다. 은행의 사금고화를 우려해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원칙을 고수하며 금융계가 발전되기를 바라왔다. 그런데 정치가, 대주주, 금융당국 등 지도부가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지 않는 한 그런 원칙이 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든다.

타임지가 20세기를 대표하는 남미 최고의 경제학자로 선정한 에르난도 데 소토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이유를 찾기 위해 100명의 연구팀을 이끌고 이집트, 필리핀, 아이티, 페루에서 5년 동안 연구했다. 그 결과를 정리한 ‘자본의 미스터리’는 그 원인으로 부정부패를 꼽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지도층이 부패되어 있으면 소용없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더글러스 노스도 문화나 신뢰와 같은 비형식적 제도가 법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하물며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금융계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신용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겼던 네덜란드 상인들처럼 금융부문의 신용 회복을 위해 지도부가 목숨을 걸기 바란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