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1-05-01 18:00
(43) 혼자, 그 바닥까지
예수의 길은 사람의 길과는 다르다.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데, 마가복음을 묵상하며 예수의 길을 추적할수록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진다. 아니 예수가 지나간 어떤 지점, 그분이 겪은 어떤 상황에서는 사람이 따라가기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에서 살면서 때론 문화적 고독을 느낀다. 다른 문화 속에서 섬처럼 떨어져 있다는 감정이다. 교민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한인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에겐 교회의 사귐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도 있지만 문화적으로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또 하나의 큰 기쁨이다. 주일의 만남이 외로운 섬이란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게 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길은 십자가로 간다. 마지막 지점이다. 십자가가 처음으로 드러나는 게 8장이다. 마가복음이 모두 16장이니까 가운데 정도에서 예수님이 걸어가는 길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이 본격적으로 가팔라지는 건 14장이다. 십자가 사건이 마가복음의 중심 주제인데, 이렇게 보면 13장까지는 긴 서론이고 나머지 세 장이 본론이자 결론이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긴 서론이 붙은 십자가 이야기’가 된다.
십자가가 현실로 발생하기 직전에 예수님은 혼자셨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날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아셨다. 마가복음을 따라 예수의 길을 짚어가면서 마지막 부분에 다가서면 예수님의 삶과 길이 더 분명하게 보인다. 내 머릿속에는 지금까지 묵상한 것과 그동안 읽었던 책, 그리고 신학자 선배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로 또렷하게 예수님이 걸어간 길이 보인다. 그 길로 예수님은 혼자 걸어가고 계셨다.
마가복음 14장 50절 기록이 이렇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예수님이 체포될 때의 상황이다. 한 청년이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쳤다는 에피소드는 한편으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얼마나 황급하게 자기 몸을 사리며 도망쳤는지를 잘 보여주며, 다른 한편으론 예수님이 얼마나 철저하게 혼자가 되셨는지를 말해준다. 이 구절에서 한 글자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에 이 글자가 또 나온다. 53절이다.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모인 사람이 세 부류인데, 아주 정확하게 유대의 최고 통치기관인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다. 때는 한밤중이다. 미리 연락이 돼있었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모였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철저하게 힘을 모았다.
얼마나 대조적인가! 돈도 권력도 없는 제자들이나마 같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 도망쳤다.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이 다 모여 예수를 죽이는 작업을 진행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는데 혼자다. 고독과 외로움의 바닥까지 혼자 걸어간다. 혼자 있는 것은 창세기의 창조에서 유일하게 좋지 않은 것이었다. 그걸 예수님이 경험하신다.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님을 버리실 것이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5:34). 그래서 드디어 예수님은 존재의 고독, 그 무서운 고통을 혼자서 겪으신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