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목회' 이윤재 목사 "예수님이라면 고소고발 하겠나"
입력 2011-05-02 11:40
[미션라이프] 고 이중표 목사의 별세목회를 이어받아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는 경기도 분당 한신교회 이윤재(57) 목사를 만나서 근황과 이윤재목사 버전의 별세 목회에 대해 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건강이 안 좋다, 미국에서 온지 16년 됐다. 올 8월이면 한신교회 목회 7년째다. 그동안 한번도 못 쉬었다. 그게 죄가 된 것 같다. 안식일을 안 지키는 것만 죄고 안식년을 안 지키는 것은 열심인 것 같은데 아니다. 안식년을 가질까 생각중이다.”
-별세목회가 오히려 부담이 된 것은 아닌지.
“그동안 영성을 말하면서 순교적인 영성만 영성인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까 월요일 쉬는 것에 죄 의식을 느낄 만큼 목회에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생각을 주시더라. ‘쉬는 것은 노는 것과 다르다, 쉬는 것도 목회에서 필요하다.’ 이것을 겨우 느낀다. 또 그동안 이중표 목사님의 빈자리를 잘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목사님과 비교되는데 이 분의 성자적인 삶을 닮아가기가 얼마나 어렵나. 교인들은 닮아주길 바라고, 흉내 내기도 어려운데 흉내 안낼 수 없고…. 기대할 사람에게 기대해야 하는데 기대 못 할 사람에게 기대하니까 안 된다. 이제는 그 부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제 색깔도 찾고 있다,”
-자기 색깔을 이야기 했는데 이 목사와 다른 점과 같은 점을 꼽자면.
“같은 것은 예수님 중심의 사고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 목회를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이 같다. 이 목사님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이야기를 하면 90%는 예수님 이야기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하는지 모른다. 목사가 목사를 만나 예수님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하는 분은 없다. 부목사를 앞에 두고도 예수님 이야기를 또 하시고. 혼자 울고, 그러셨다. 이 목사님을 서울신대 다닐 때 만났다. 이때 이 같은 예수님 중심의 사고가 가슴에 확 들어왔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도 갔다. 예수님의 발자취가 좋아서 그곳에 3년 머물렀다.”
-다른 점은.
“이 목사님은 굉장히 카리스마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독재적이다. 반면 저는 교인들과 소통하길 좋아하고, 소통이 잘 된 다기 보다 적어도 필요성을 느끼고 소통을 위해 애 쓴다. 이 목사님은 설교 중심이고 나는 교육 중심이다. 목사님은 ‘하늘의 우렛소리’면 끝난다고 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면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맞다.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더라. 이런 사람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프로세스를 갖고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래서 나때 제자훈련을 도입해 뿌리를 내렸다. 나는 가르치는 쪽에 그분은 설교하는 쪽에, 그분은 하늘에, 나는 땅에 관심이 많다.”
-결국 예수님 중심의 마음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인데, 구체적인 방법은.
“별세는 누가복음 9장 31절 변화산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실 새’에서 나오는 단어다. 학자들은 이 말의 원어 ‘엑소돈’을 첫째는 죽음, 둘째는 부활로 해석한다. 셋째는 승천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여기서 나는 영성의 구조를 ‘죽고, 살고, 살리고’의 삼중적으로 해석하고 다시 영성이란 첫째 예수님과 함께 죽고 둘째 예수님과 함께 살고 셋째 예수님 때문에 세상을 살리는 능력으로 고백한다. 이 목사님의 ‘죽고’ 즉 ‘자기 죽음’ ‘자기 부정’ ‘자기희생’의 순교적 죽음에 가깝다. 특히 네 번의 수술을 통해 늘 생과 사를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눈물의 영성을 갖고 계셨다. 그런데 지금은 밝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것이 어필하는 시기다. 그래서 나는 ‘살고 살리는’ 쪽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별세의 ‘죽고 살고 살리고’의 케리그마 구조 속에서 ‘살고 살리는’쪽의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이 목사님의 경험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성경적 삶을 살도록 별세의 신학화 교육화 모델화가 그것이다. 결국 예수님 중심의 마음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영성 회복, 유지를 위한 개인적인 삶은.
“성경 읽고 책 읽고 기도하는데 월요일을 다 보낸다. 한달 중에 반절 월요일은 기도원에 가 있다. 월요일은 영성을 위한 날로 여기고 소중히 여겨왔다. 그 다음, 대외 공직은 안 맡기로 했다. 처음에 좋은 뜻으로 시작해도 나중에는 욕심이 되더라. 다른 사람이 대표를 맡으면 싫고 속상하고 내가 더 잘하는데 싶어 경쟁심이 생긴다. 목회자들의 명예욕이 한국교회의 가장 문제이기도 하지 않는가. 요즘 때가 되니까 노회장 하라, 총회장 하라 하는데 제발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이 분들이 미사여구로 듣는다. 선배들도 다 그러다가 했다고. 총회를 위해 일하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자기 영성이 깨지니까 그게 문제다. ‘교회 안에 수도사’처럼 꾸준히 자기 부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고 알려지면 목회자 자신이 주체를 못한다. 자기가 잘한 것 같고…. 그래서 목회 성공이 어려운 게 아니라 자기 부정이 어렵구나 싶다. 100%는 안 된다. 처음부터 되는 것도 아니다. 100% 다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부정을 지속적으로 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박사 논문 주제가 수도원에 대한 것이던데.
“비잔틴 시대 유대광야의 수도원 영성 연구를 주제로 썼다.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72개 수도원 중에 지금 남은 27개를 일일이 돌아봤다. 수도원 제도를 회복하자는 게 아니다. 어떻게 수도사처럼 살겠나. 고기 안 먹고 하루에 두 끼 먹고, 기름 안 바르고, 물 한 방울에 소금절인 음식 먹고. 목회자가 수도원안에 있는 것처럼 자기를 복종시켜야 한다는 거다. 나는 ‘설교를 위해 말씀해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나를 살려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내가 오늘 살아가려면 은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자로서가 아니라 구도자로서, 성도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목회자로서 타락할 요소, 잘못할 요소가 얼마나 많나. 그런 속에서 정도를 걸어간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성도들 영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성경을 많이 읽는 것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은혜를 강조한다. 루터의 ‘오직 은혜’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행동이 없는 ‘값싼 은혜’로 전락됐다. 그래서 은혜는 받지만 삶이 못 따라가고 있다. 리처드 포스터가 말한 것처럼 ‘은혜는 훈련으로, 훈련은 은혜로’ 이 도식이 돌아가야 하는데 은혜에서 그냥 끝난다는 말이다. 이게 다 목회자 책임이다. 죽었다는 것은 은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은혜의 표상이다. 그런데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뭐라 말하는지 듣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명령하고 지시하고 순종을 요구할 때 순종하면서 그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잘 안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우리의 과제다. 별세신앙은 이름은 기괴하고 어렵고 안 좋은 말인데 이 말에 은혜와 삶의 조화가 있다. 죽음과 부활, 승천, 죽고 살고 살리고의 이 삼중적 구조 안에는 모든 신앙이 들어가 있다. ‘예수 안에서 죽고’ 은혜다. 그 다음에 또 내가 그리스도안에 살아서 세상을 살리는 거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 또 나도 죽어야 한다. 자기 죽음을 고백하니까, 자연히 자기도 모르게 날마다 거룩한 삶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필요한 영성이 별세 목회라는 이야기인데.
“별세 목회는 철저히 자기를 죽이는 목회다. 이 시대 한국교회의 난맥상에 어쩌면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은 것, 또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죽는 것, 이 두 가지의 조화가 별세목회 속에 담겨있다.”
-한국교회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같은 맥락에서 보면 신학적으로 오직 은혜주의를 극복하고, 은혜와 함께 믿음과 순종, 훈련이 따라가야 한다. 균형 잡힌 목회가 이뤄져야 한다. 목회자들이 철저히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무슨 문제가 있나. 나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이야기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모델이 아닐 때가 많다. 그분은 그저 참고적일 때가 많다. 인용부호다. 솔직히 말해 예수님을 설교하기 위해서 끌어들일 때가 많다. 정말 예수님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설교를 위해 인용한다. 그분의 삶을 레퍼런스가 아니라 모델로 여기고 따라가려 한다면 어떻게 법적인 고소가 가능하냐 이거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 목사들이 서로를 정죄하면서 나는 옳은데 너는 틀렸으니까 법정에서 옥석을 가리자고 말하나. 하나님이 재판장이라고 주장하고 말하면서 하나님 앞에 재판받는 게 아니고 세상법정에 간다는 게 말이 되나. 예수님만 바라보는 영성을 갖는다면. 그분이 그랬을까? 그랬을까? 그랬을까? 절대 안 그랬을 거라는 거다. 절대 아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자.’ 너무 쉽고, 그것은 식상하고 너무 재미없는 표현이지만 어떻게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정말 그것이면 되지 않나. 정말 예수님을 닮으려고 목회자가 목숨을 걸었는데 어떻게 고소하고 고발하고 ‘너는 잘못했다’ ‘내가 회장이어야 한다’ 이런 발상이 나올 수 있나.”
-올해부터 영성대학을 시작했는데, 분위기가 어떤가.
“정말 있을 수 없다고 본다. 탄식할 일이다. 다른 길은 없다. 복잡한 생각은 할 필요도 없다. 예수님의 영성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에, 예수님의 영성을 훈련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예수영성대학을 시작했다. 목회자 세미나 25년 동안 많은 목회자들이 동대문야구장에 팬들이 왔다 갔다 한 것처럼 지나쳤다. 많은 목회자들이 온 것만으로 감사하다. 하지만 영성 있는 삶을 사는지는 검증하지 못했다. 이런 반성아래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게 예수영성대학이다. 한 학기에 50명 채워서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예수님 중심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어려운 학문을 가르치겠다는 생각보다는 목회자들에게 옹달샘 같은 맑은 물을 흘려 보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