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동상의 유혹

입력 2011-04-28 17:53

사람들은 상징물에 관심이 많다. 예전에는 비석에 목숨을 걸고, 요즘은 동상에 민감하다. 비석은 사자(死者)의 신분과 업적을 나타낸다. 벼슬에 따라 돌의 종류와 크기와 형태, 글씨와 문양 등에서 차이를 뒀다. 죽기 전에 비석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돌로 만든 비석은 영원불멸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비석이 추념과 과시의 목적이라면 동상은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동상은 대상의 삶을 우러르고 따르는 자들의 선택이기에 인물과 장소가 중요하다. 두 요소는 서로 연동된다. 개인적 공간에 세우는 동상이야 구성원들의 동의만 구하면 된다. 입상 대신 흉상을 제작해 실내에 모시기도 한다. 기업이나 학교가 대표적이다. 세간의 평가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문제는 공공장소에 건립하는 동상이다. 많은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만나기에 요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먼저 주인공의 삶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 장소 적합성도 중요하다. 왜 그 사람이 하필 그 자리에 서게 됐는지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공자 동상이 마오쩌둥 초상에 밀린 것도 장소성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 이 요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딱 둘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오천년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언제, 누가, 어디에 세워도 괜찮다. 다음으로는 김구, 안중근 정도가 전국구 인물로 꼽힌다. 문인, 과학자, 예술가 등은 다툼이 덜한 사람들이다.

가장 시비가 많은 것이 현대 정치인이다. 현대라는 것은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평가는 집권세력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도, 새로운 자료나 해석을 통해 바뀌기도 한다. 정치인이라는 신분은 음영을 동반하기에 시각차가 크다. 그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언제부턴가 해마다 4, 5월이면 동상 소리로 시끄럽다. 논란의 중심에는 이승만과 박정희가 있다. 4·19와 5·16의 핵심인물이다.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나라를 근대화로 이끈 공로를 높이 평가한 사람은 동상을 높이 세우자고 주장한다. 가혹한 독재자로 보는 사람은 반대한다.

해법은 동상 건립의 원칙에 있다. 적어도 피해자가 동의하기 전에는 공공장소에 나오기 어렵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금물이다. 쇠붙이가 역사적 평가의 종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정쩡한 동상은 되레 전복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쓰러진 동상이 어디 한둘이던가.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