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상온] ‘핵 테러 이후’ 한반도
입력 2011-04-28 17:50
엊그제 섬뜩한 기사가 신문마다 실렸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들의 심문기록에 관한 비밀문서다. 이 문서에 따르면 알카에다의 한 고위 간부는 “오사마 빈 라덴이 체포되거나 암살될 경우 터뜨리기 위해 유럽에 핵폭탄을 숨겨 뒀다”고 진술했다. 9·11테러의 주모자인 칼리드 세이크 모하메드도 심문에서 “서방에 핵폭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일방적 주장일 뿐 알카에다가 실제로 핵무기를 입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알카에다는 농축 우라늄 등 핵물질을 얻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음이 심문과정에서 밝혀졌다. 만에 하나 알카에다의 핵무기 입수가 사실이라면, 그리고 인구 조밀지역인 유럽에서 핵폭탄을 터뜨린다면 그 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유럽에 핵폭탄 숨겨뒀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핵 테러 이후다. 유럽이 핵 테러의 참화를 당한다면 보복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아마도 ‘핵 보복’이 될 것이며, 그 대상은 핵 테러 행위자는 물론 핵무기 또는 핵물질 제공자까지 포함될 것이다. 이때 제공자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면 가장 큰 혐의는 어느 나라에 돌아갈까?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북한 정도인 현재 핵보유국 중 ‘불량국가’로 소문난 북한이 혐의자로 지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설령 북한이 제공자가 아니라고 해도 보복 대상이 필요한 유럽의 핵보유국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나토 국가들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희생양 삼아 핵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픽션이지만 이와 유사한 상황을 그린 미국 TV 드라마도 있다. 2006년과 2008년 CBS TV가 두 시즌에 걸쳐 방영한 ‘제리코’다.
미국 전역의 23개 주요 도시가 핵 공격을 받아 철저히 파괴된다. 기존 질서는 무너지고 전력과 통신이 두절되면서 물품 부족 등 고난이 닥친다. 미국은 ‘동미(東美) 합중국’과 서부를 장악한 ‘미(美)연합국’ 그리고 ‘텍사스 공화국’으로 갈라진다. 드라마는 이런 상황에서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 제리코 주민들이 어떻게 재난을 헤쳐 나가는가를 그리고 있지만 관심이 가는 부분은 누가 핵 공격을 했느냐는 것이다.
결국 외국의 공격도 국내외의 테러도 아니고, 미국을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고도의 경찰국가로 만들려던 정부 최고위 관리들이 꾸민 음모로 드러난다. 그러나 3개로 갈라지기 전의 미국 정부는 북한과 이란을 범인으로 만들어 핵 공격을 가해 지도에서 지워버린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지나친 상상이라고? 9·11테러를 보라. 이미 현실은 할리우드의 상상력을 능가했다. 음모 부분은 몰라도 유럽에서든 미국에서든 핵 테러가 발생하고 핵 보복이 이어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북한이 그에 연루될 개연성도 높다.
존재 자체로 위험한 北核
말하자면 북한이 남한에 직접 핵 공격을 하지 않더라도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반도 전체가 핵 재앙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 포기는 완전히 물 건너간 모양새다. 핵 개발을 포기한 리비아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군사개입을 본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고집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아마르 카다피보다 훨씬 더한 김씨 일가의 세습독재 체제 유지에 있는 만큼 체제 변환(regime change)이 이뤄지지 않는 한 북한의 핵 포기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현재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맞대응으로 우리도 핵 개발을 한다거나 전술 핵을 도입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한반도가 핵 재앙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의 체제 변환이 절실하다. 드러내 놓고 추진할 수는 없겠지만 정부의 대북 정책도 이젠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