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화련] 쓸쓸한 예감

입력 2011-04-28 17:49


글로 맺은 인연이 깊어져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 내가 회장님이라 부르는 분이 있다. 수필 모임의 강사와 회장으로 만나 10년 넘도록 사귀는 동안 문우를 넘어 형제 못지않은 정이 쌓였다. 가족끼리 터놓고 지내며 틈틈이 부부 동반 여행도 한다. 오빠가 없는 나는 15년 연상인 그를 큰오라버니쯤 여기고, 형제가 없는 남편은 남편대로 그를 큰형님이려니 생각하는 것 같다. 경사가 있거나 의논할 일이 생기면 그 댁을 먼저 찾는다.

그 부부는 친정 일가붙이처럼 나를 챙긴다. 시시콜콜한 하소연도 잘 들어주고, 인생 선배답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맛있는 것도 아끼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특별한 것, 귀한 것, 맏물로 나온 것이 있으면 밤중이라도 연락을 한다.

정이 많을 뿐 아니라 오라버니는 늘 책을 가까이하고 틈만 나면 시를 읽는다. 혼자만 읽는 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에게 읽어준다. 그가 운영하는 공장의 직원들에게도 읽어준다. 전 직원이 모인 월례회를 시 낭독으로 시작하는 직장은 흔치 않을 것이다. 함께 밥을 먹거나 여행할 때 그는 종종 주머니를 뒤적인다. 주머니에는 우리에게 읽어줄 시가 들어 있다. 시가 적힌 쪽지를 찾느라 부스럭거리는 모습을 보고 내가 ‘시를 부스럭거리는 남자’라고 놀리기도 한다.

그가 요즘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 동네로 오고 싶다고 해서 처음엔 화들짝 반가웠다. 같은 도시에 살아도 두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할 때가 많았다. 공기 좋고, 가볍게 오를 산이며 공원도 있으니 어서 오시라고 부추겼다. 그런데 살던 집을 내놓고 전셋집을 구한다고 했다. 나는 말렸다. 다 늦게 무슨 셋방살이냐고, 주인이 원하면 언제라도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늘그막에 집 없는 설움을 맛보고 싶으냐고…. 그래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사업을 접을 때까지만 살 집이라고 했다.

가까이 살게 됐다고 좋아했더니 오래 머물지 않겠다고 한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는 이곳 포항에서 노후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여기가 제2의 고향이요 반평생을 몸담은 잊지 못할 땅이라 했지만 떠나기로 한 것이다. 제2의 고향은 가족과 친구가 있고 일이 있어 소중하다. 소중하지만 힘이 세지는 않다. 아이들이 다 커서 나가고 일마저 놓았을 때 허전한 그 마음을 잡아주지 못한다. 고향으로, 자식들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 사람의 미래는 결국 노후가 된다. 앞날을 말할 때 노후를 이야기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곧잘 그때를 떠올린다. 어찌하면 좀 재미있을까, 어떡하면 덜 심심할까. 햇살 좋은 곳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사는 상상을 해 본다. 상상의 그림에 외로움 같은 건 없다. 친구들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회장님네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집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린 상상화는 한쪽이 텅 빌 것 같다. 그림 속 마을은 쓸쓸해지고, 쓸쓸함에 전염되듯 빈 집이 하나둘 늘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어쩌면 나 자신도 누군가의 쓸쓸한 예감이 될지 모르겠다.

이화련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