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구애받고 짐싸는 지상파 예능 PD들

입력 2011-04-28 17:30


‘무한도전’ 여운혁·‘올드 미스 다이어리’ 김석윤 PD 등 이직

스타급 이적료 10억 넘는 듯… 향후 대규모 자리이동 예고


지상파 예능 PD들이 올 하반기 출범을 앞둔 종합편성채널로 속속 자리를 옮기고 있다. 그동안은 지상파가 갖는 안정성과 영향력 때문에 지상파 PD의 이동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최근 스타급 PD들이 잇따라 이탈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향후 예능 PD들의 대규모 종편 러시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도 힘을 얻고 있다.

방송계에 따르면 현재 종편행을 결정했거나, 이적을 저울질하고 있는 PD는 KBS가 10∼15명, MBC가 4∼5명 수준이다. KBS에서는 ‘올드 미스 다이어리’를 연출한 김석윤 PD가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방송사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을 기획한 김시규 PD도 종편행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MBC는 ‘무릎팍 도사’ ‘무한도전’ 등을 기획한 여운혁 PD가 이미 회사를 그만뒀고, ‘위대한 탄생’을 연출한 임정아 PD 역시 종편행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SBS는 아직 뚜렷한 이적 움직임이 없다. 일부 PD들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긴 했지만 회사의 만류로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KBS 한 예능 PD는 “김시규 선배의 경우 능력도 뛰어나고 후배들 사이에서 신망도 두터웠다. 그래서 종편행 소식을 듣고 다들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SBS가 개국할 때 예능국 PD 40여명 중 10여명이 나갔던 것에 비춰보면 (현재 예능국 PD가 90여명이니) 앞으로 20명 넘게 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MBC 역시 간판 PD인 여운혁 PD 이적에 크게 술렁이는 분위기다.

스타급 예능 PD들은 많게는 10억원이 넘는 이적료를 제시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편이 이처럼 예능 PD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도 영역은 자체 인력과 경력기자 채용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의 경우 외주제작 시장이 커서 이를 활용하면 된다. 하지만 예능은 제작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지상파 PD에 집중돼 있다. 종편 입장에서는 이들을 영입하면 광범위한 연예계 인맥도 확보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예능이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가 적게 들면서도 드라마 못지않은 시청률을 보장한다는 측면 역시 종편이 예능 PD 영입에 총력을 기울이는 배경이다.

지상파 노조들은 예능 PD들이 이적을 결심하거나 이를 고민하는 이유가 거액의 이적료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자유로운 제작 환경을 보장하지 않는 회사 분위기 등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는 지난 26일 특보를 통해 “김재철 사장 부임 이후 PD들의 자율성이 사라지고 있다. 예능국 PD들의 연쇄 이적 사태는 단적인 예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6개월 전 종편 출범 소식을 들은 예능 PD들은 ‘누가 MBC를 그만두고 종편으로 갈 수 있겠느냐’며 가능성을 높게 두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은 정반대”라며 “조만간 우리는 종편에서 제2의 MBC 예능국이 출범하는 걸 지켜봐야 할 판이다”고 한탄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도 같은 날 발행한 특보를 통해 “KBS 예능 PD는 시청률 경쟁의 최전선에 있지만 ‘공영방송다움’을 지켜야하는 핸디캡이 있다”며 “잇단 관제성 특집과 불합리한 인사도 미래가 보이지 않게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며 “PD들 대부분이 KBS에 남아봤자 미래가 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늦기 전에 도전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막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