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찬영 (20·끝) 선교지 교회와 사전에 협력할 필요
입력 2011-04-28 17:37
1992년 2월 은퇴하고 어디서 지낼 것인지 고민하던 중 자녀들이 살고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갔다가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을 방문하게 됐다. 학교에서는 또다시 교수로 일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승낙했다. 나는 풀러신학교에서 선교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임윤택 선교사와 함께 풀러선교대학원 한국학부 주임교수가 돼 선교사 및 신학생을 도왔다.
당시 5년간 연봉 1달러 교수로 후학을 길러냈다. 학교 측이 교수 초빙 계약을 하자고 요청했을 때 난 월급이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 서류상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해 1년에 1달러 받는 것으로 했다. 1954년 유학생으로 가려 했던 풀러신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다.
또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태국 등지에서 37년간 사역하는 동안 영락교회가 파송교회로서 최선을 다해 지원해 주었다는 것이다. 기도와 사랑 외에도 생활비 및 사역비 보조 등 지속적인 도움을 주었다. 특히 고 한경직 목사님은 언제나 조언과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한 목사님의 고언을 들을 수 있었다는 건 나에게 큰 자랑거리였다.
이 지면을 빌려 아내와 네 자녀에게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싶다. 아내는 지난 56년간 내 곁에서 함께 고생하면서도 내가 신앙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도록 도왔다. 이제는 할머니가 돼 몸이 쇠약해졌지만 주님을 향한 헌신된 마음만은 젊은이 못지않게 뜨겁다. 나는 매우 바쁘게 활동을 하다보니 자녀들을 일일이 보살피기 어려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간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고 장성했을 때도 떨어져 지내야 했다. 미안함이 적지 않는데 아이들이 잘 자라줘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인간은 강한 것을 좋아한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정치, 권력, 물질, 명예 등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그 유혹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선교사에게 영성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교사가 영적으로 바로 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도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 나는 최상의 영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성경을 보고 깊이 묵상하며 성경 속 인물들을 본받으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나보다 먼저 간 선배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 이야기를 담은 글을 보면서 도움도 받았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선교지 교회와는 전혀 상관없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적잖다. 어느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곳에 오게 됐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아무개 목사님께서 가라고 해서 그냥 왔습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할 때 선교지 교회들과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지 미리 정립하지 않으면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크리스천이라면 선교를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야 한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남을 위해 살아야 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여야 한다. 선교는 선교사만을 위한 과제가 아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몫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 세계가 한국교회를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비서구권 교회를 대표하게 됐다. 세계 곳곳에 파송한 선교사만 2만3000여명에 달한다. 한국교회는 단기적 성과에만 매달리지 말고 무엇보다 겸손하게 전 세계를 섬기기 바란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