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선] 김해乙 당선 김태호…총리 낙마 7개월 만에 ‘盧고향’서 재기
입력 2011-04-28 02:05
경남 김해을에서 역전 드라마를 펼친 김태호(49) 당선자는 27일 “경남의 아들로서, 김해 일꾼으로서 다시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데 감사드린다”며 “김해가 동남권의 경제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8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좌절했던 김 전 지사는 이날 극적인 승리로 제2의 정치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에서 야권 단일후보를 꺾었다는 점에서 향후 행보에도 상당한 힘이 실릴 전망이다. 당장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김 당선자는 1962년 경남 거창에서 소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농부의 길을 꿈꿨으나 “농사를 지으려면 농약병에 적힌 영어는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버지의 말에 자극을 받아 거창농고에 입학했다. 이후 서울대 농업교육과에 진학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아버지의 죽마고우였던 고(故) 김동영 전 의원의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정치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나 정치권에 발을 들인 것은 92년 이강두 전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다. 이어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에서 사회정책실장을 맡았고, 98년 경남도의원에 당선됐다. 거창군수를 거쳐 2004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최연소 도지사로 당선되면서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 외모를 지닌 김 당선자는 젊고 신선한 이미지에 특유의 친화력 등을 내세워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경남지사 시절 남해안발전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며 급성장했다. 이어 지난해 8월 개각에서 헌정 사상 5번째 ‘40대 총리’로 지목받으며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박연차 게이트’와 ‘스폰서 의혹’ 등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서 클린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고 결국 지명 3주 만에 자진사퇴했다. 그 해 10월 조용히 중국 베이징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6개월만인 지난달 5일, 여권의 끈질긴 김해 출마 권유를 받아들여 귀국했다. 당시 “일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일성을 내놓으며 강한 투지를 불태웠고, 선거 기간 내내 중앙당 지원 없이 철저히 ‘나홀로 선거’ 운동을 펼치며 절치부심,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김나래 기자, 김해=이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