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제2, 제3의 은식이 나오려면

입력 2011-04-27 17:46


출생 몸무게 380g. 국내에서 가장 작은 아기였다. 의학계에선 400g 미만 아기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임신 25주 만에 예상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은식이는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9개월여 만에 3.5㎏으로 건강하게 자랐다. ‘생명의 기적’이 따로 없다.

미숙아는 임신 37주(정상은 40주)가 안 돼 태어난 신생아를 말한다. 특히 출생 체중 2.5㎏ 미만을 저체중아라고 하는데 의학의 발달로 임신 25주, 출생 체중 1㎏ 미만 ‘초극소 저체중아’의 생존율도 높아지고 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NICU) 덕분이다. 이곳은 엄마 뱃속과 똑같은 환경을 유지하고 응급 상황에 대비한 첨단 의료 장비들이 구비돼 있다. 24시간 신생아에게 눈을 떼지 않는 의료진 간 호흡도 중요하다. 은식이가 태어난 삼성서울병원은 은식이 한 명을 위해 의사 10명, 간호사 25명이 3교대로 집중치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제대로 된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운영하는 곳은 서울과 수도권의 몇몇 대학병원에 불과하다.

고령 출산, 다태아 임신의 증가로 미숙아 출산율이 점점 늘면서 신생아 집중치료실의 수요가 더욱 많아졌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엔 한참 역부족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5㎏ 미만 저체중아 발생률은 2000년 3.8%에서 2009년 4.9%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매년 지역별 신생아 집중치료센터 지정을 늘리고 있지만 의료 인력, 병상 수, 운영비, 진료 체계 부족 현상은 여전하다.

가장 시급한 것이 병상 증설이다. 정부는 신생아 집중치료 병상의 지역별 불균형 해소를 위해 2008년 3곳(30병상)을 시작으로 2009년 2곳(20병상), 2010년 3곳(30병상), 2011년 5곳(50병상)의 지역 거점기관을 지정해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 장윤실 교수팀이 지난해 11월 전국 총 117개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생아 집중치료 실태조사 및 생존율 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전국적으로 200∼600개 이상 신생아 집중치료 병상의 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의 수요와 공급 불균형은 과거에 비해 뚜렷이 감소한 운영 병원과 병상 수 탓이기도 하다. 2005년만 해도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실제 운영했던 곳은 143개 의료기관, 1731병상이었지만 2010년 10월 기준에선 93개 병원, 1252병상으로 급격히 줄었다. 한 해에 2만∼3만명씩 태어나는 2.5㎏ 미만 저체중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병원들이 이처럼 신생아 집중치료실 운영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경영 적자, 인력 부족 등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은 ‘돈이 안 되는 반면 들어가는 돈은 많은’ 분야여서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계속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그나마 있는 병상의 절반은 중증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신생아가 사용한다. 이들은 한 번 입원하면 2∼3개월씩 머물기 때문에 한 해 약 7000∼8000명의 저체중아는 병상 부족 탓에 태어나자마자 생존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런 사정은 지방일수록 더 심하다. 때문에 조기 출산 산모와 미숙아는 인큐베이터를 찾아 전국을 떠돌아야 한다. 충주의 한 산부인과를 다니던 은식이 부모도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아 서울로 올라왔고, 운 좋게 마지막 남은 한 개의 분만실을 얻었다고 한다.

따라서 제2, 제3의 은식이 기적이 나오려면 답은 분명하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의 장기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또 지역→권역→종합센터(서울)로 이어지는 전국적인 신생아 집중치료 전원(이송) 체계망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이제 민간 병원이나 일부 의사들의 희생과 사명감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정부가 저출산 극복을 외치지만 태어난 아기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건 정말 아이러니다.” 한 대학병원 교수의 말을 깊게 되짚어 봐야 할 때다.

민태원 문화과학부차장 .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