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진홍] 위기는 어느 날 홀로 오지 않는다
입력 2011-04-27 17:47
“대통령과 참모들은 친이계의 지속적인 분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나라당의 정두언, 정태근, 조해진 의원. 이들은 지난 총선 당시 현 정권의 주류세력인 친이계 몫으로 공천 받아 금배지를 달았다. 정두언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출마 결심을 굳히기 전부터 이 대통령 곁을 지켰었다. 정태근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 수행단장을, 조 의원은 공보특보를 각각 역임했다. 이 대통령과의 각별한 친분으로, 집권 초기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정두언 의원을 시작으로 차례로 현 정권에 등을 돌렸다. 지금은 친이계임을 거부한 채 야당 의원보다 더 강하게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있다. 이들의 발언에는 거침이 없다.
정두언 의원은 최근 이런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한나라당에 대해 20대는 재수없다고 하고, 30대는 죽이고 싶다고 하고, 40대는 관심 없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내 임기 중) 레임덕은 없다”고 했으나, 정두언 의원은 “레임덕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했다. 정태근 의원은 48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서울에서 내년 총선 때 한나라당이 10명의 당선자를 내면 다행일 것이라는 말을 했다. 집권세력에 대한 싸늘한 여론을 가감 없이 전한 것이나, 이 대통령과의 특수 관계를 고려할 때 입에 담기 쉽지 않은 직설이다.
조 의원은 “동남권 신공항은 뼛속까지 수도권 논리에 젖은 정치권과 정부에 침몰된 것”이라고 일갈했다.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감싸는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서 이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힐난했다.
이들 3인 외에 사적 모임에서 현 정권의 무능력을 질타하는 친이계들도 적지 않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4·27 재보선을 앞두고 친이계를 불러 모은 데에도 내부를 보다 철저히 단속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터져버린 물꼬를 막을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알려진 대로 친이계는 한 몸이 아니다. 친이계는 친이재오계와 친이상득계로 크게 나뉘어 티격태격하고 있다. 최근에도 자파 인사를 중용시키려 물밑에서 치열하게 다퉜다는 소식이다. 차기 한나라당 원내대표 자리를 놓고 조만간 격돌할 조짐도 엿보인다. 정두언 의원은 이 장관 또는 이 의원과 여전히 각을 세우고 있다.
친이계의 분화에는 태생적 한계가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친이계는 DJ의 동교동계나 YS의 상도동계처럼 오랜 시간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들이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정권을 잡기 위해 급조된 세력이다. 그만큼 응집력이 강하지 않다. 정권 창출이라는 공통의 목적도 이미 달성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갈 여건이 이미 조성돼 있었던 셈이다.
더욱이 공교롭게 이 대통령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차기 총선이 치러진다. 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거나, ‘마이웨이’를 선언할 의원들이 잇따를 소지가 다분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친이계 분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친이계 이탈 의원이 이 대통령 또는 핵심 참모들에게 직접 비수를 들이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총선에서 살아남으려 이 대통령 또는 핵심 참모들과 일전을 벌이려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레임덕을 부추겨 임기 말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위기가 어느 날 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작은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에선 머지않아 대형 사고가 일어나기 십상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도 사전에 여러 징후들이 있었다.
친이계의 지속적인 분화는 현 정부에 불길한 징후다. 이 대통령과 참모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폄하하고, 방치하면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정치란 가까운 곳의 사람들이 기뻐하며 따라오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떠나가는 판에 먼 곳의 사람들이 모여들 리 없다. 그러나 친이계를 재결집할 묘책이 여의치 않다. 시간도 많지 않다. 지금 여권의 기상은 ‘잔뜩 흐림’이다.
김진홍 편집국 부국장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