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찬영 (19) 세계 5만5000여 교회 ‘중국산 성경’ 사용

입력 2011-04-27 17:55


과거 중국에 성경을 보내기 위해서는 1권당 10달러에서 12달러50센트가 들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이런 행위는 불법이었다. 이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많은 양이 소실되기도 했다. 중국에 성경 인쇄공장을 세운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 많은 사람이 염려했었다. 아니 염려보다는 부정적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유권을 포기하면 손해만 보는 것 아닌가?” “성경을 찍지 않고 공산당 선전물을 찍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산당 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나는 반대 의견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 일을 추진했다. 중국 사람들이 성경을 보다 빨리 읽을 수 있도록 가장 좋은 인쇄 시설을 기증하고 싶었다. 영국에서 들여온 인쇄기계인 팀슨은 신문을 찍어내듯 빨리 인쇄할 수 있었고 정밀도 또한 남달랐다. 일본에서는 컴퓨터를 들여왔다. 중국 정부는 이 공장에서 성경을 찍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공식적으로 허락해주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신학교가 있는 난징에 세워진 이 공장의 건축비로 50만 달러 정도가 소요됐다. 500만 달러 상당의 인쇄기를 채워 넣었다.

인쇄공장은 1986년 11월 8일 기공식을 가진 뒤 8개월 만인 87년 7월 7일 완공됐다. 그해 12월 5일부터 이 공장을 통해 성경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93년 한 해에만 160만권의 성경이 인쇄됐다. 중국어 성경뿐 아니라 다른 소수부족 언어 성경도 인쇄했다. 중국 거주 한인을 위한 9만권의 관주성경과 9만2000권의 찬송가도 인쇄했다. 한국 성서공회에서는 관주 성경전서의 필름을 보내주기도 했다. 2008년까지 6000만권의 성경이 인쇄됐다. 애덕기금회의 2010년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5만5000여 교회가 중국에서 인쇄된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 인쇄된 성경만 8000만부를 넘어섰다. 매달 100만부 이상 인쇄할 수 있어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다.

나는 성서공회 사역에 있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그래서 후계자를 선정한 뒤 1년에 걸친 인수인계 절차 등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이사회에 은퇴 의사를 사전에 밝혔다. 은퇴 4년 전인 92년 2월 1일부로 은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결심했다. 첫째, 지금까지 했던 일에 대해 더 이상 잔소리하는 사람으로 남지 않겠다. 둘째, 후임자가 마음껏 일하도록 될 수 있는 한 멀리 떠나겠다. 일생을 바친 일이었기에 많은 인간적 생각과 집착이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했던 일은 내 일이 아니요, 하나님의 일을 잠시 맡아 한 것뿐이므로 일에 대한 모든 미련을 떨쳐버렸다.

은퇴를 발표하자 아시아 지역의 모든 성서공회 사역자들이 깜짝 놀랐다. 우리는 후계자 선정 작업에 착수해 21년간 함께 사역해온 대만 성서공회 총무 출신인 채런리라는 분을 아시아·태평양 총무로 선출했다. 은퇴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과 미국 신학교에서, 선교단체에서, 세계적인 지도자 교육기관에서 퇴임 후 후진 양성을 위해 수고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다음 행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만 했다. 은퇴 후 생활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장이던 폴 피어슨 박사로부터 한 장의 팩스를 받았다. 풀러신학교 객원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뜻밖의 제안이었다. 나는 학자가 아니라 선교지에서 선교행정가로만 일했기에 학교는 내가 갈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