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어린이를 위한 자선공연 6년 마술사 함현진씨 “절망을 알기전에 희망을 줘야죠”
입력 2011-04-27 17:52
“동영상 찍어도 돼요? 엄마 보여주려고요.”
“물 먹고 와도 돼요?” “발 올리지 마.”
“얘가 자리 뺏었어요.” “원래 내 자리야.” “내 자리거든.”
“큰 애들이 모두 앞에 앉았네!” “말 잘 듣는 애들이에요.”
6세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아이들. 말 많고 궁금한 것도 많다. 잠시도 가만 앉아있지 못한다. 자리에 다 앉은 것 같은데, 금세 일어나 화장실을 가겠다고 아우성이다. 한쪽에선 주먹질이 오간다.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른 친구 일에 참견한다.
역시 아이들. 그늘속에서도 밝다
마술사가 맨 앞 줄 한 아이에게 고무줄을 주며 양손으로 늘이라고 한다. 마술사는 다른 고무줄을 늘여 아이가 늘인 고무줄과 직각으로 맞댄다. 통과시키겠다는 투다. 당연히 안 된다. 마술사는 아이의 콧잔등에서 콧기름을 묻혀 고무줄에 바른다. 그리고 다시 시도한다. 마술사의 고무줄은 아이의 고무줄을 통과한다.
“어!” “어!” 교실이 조용하다. 휴대전화를 꺼내 흔들던 아이, 티격태격 말싸움하던 아이, 주먹질하던 아이 모두 마술사의 손에 집중한다.
마술사가 다시 한번 하겠다고 제스처를 취한다. 아이들 행동, 올 스톱이다. 이어 마술사의 고무줄이 아이의 고무줄을 끊지 않고 가르자 “와!” 환호성이 터진다.
역시 아이들이다. 티 없이 맑고 밝았다. 쪽방촌 아이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한 사람이 생활하기도 힘든 4.9㎡(1.5평) 방에서 부모와 사는 아이들이다. 학원 다니는 것은 고사하고 날마다 밥 먹기도 힘든 이들이다.
하지만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쪽방촌 인근 한 공부방에서 만난 아이들은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그랬다.
“이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가난이 뭔지, 포기가 뭔지, 절망이 뭔지 잘 몰라요. 이를 알기 전에 먼저 희망, 꿈을 알려주고 싶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신 비전, 환상을 보게 하고 싶어요.” 마술사 함현진(37)씨가 쪽방촌을 찾는 이유다.
함씨도 한때 쪽방촌에서 살았다. 본래 넉넉한 가정이 아니었다. 부모는 함씨 대학 2학년 때 사기를 당했다. 그때부터 함씨가 직접 돈을 벌어야 했다. 1992년 12월부터 서울역 인력시장에 나갔다. 군 입대 전까지 7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막노동했다. 간식비까지 모아 부모께 드렸다. 노숙도 했다. 인력시장에 일찍 나오려고 집에 가지 않았다. 서울역 안에 숨어 있다가 새벽 2시에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도 새벽에는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고 저녁에는 슈퍼에서 일했다.
한때 월 15만원 쪽방에서 살아
쪽방에는 중국에서 돌아온 직후 반년 동안 살았다. 안양대 신학부를 졸업한 그는 중국 산둥성의 칭다오시에서 현지 한인교회 전도사로 일했다. 그 사이 집은 더 어려워졌고 한국에 돌아오자 누울 곳이 없었다. 그래서 독립했다. 월 15만원짜리 경기도 군포시 군포역 인근 쪽방으로 옮겼다. “반년을 살다가 월세 30만원 방으로 옮겼어요. 지금 제 화려한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그런 함씨를 지탱해준 것이 마술이었다. 그는 대학 때 ‘교회교육연구회’라는 동아리에서 레크리에이션과 인형극을 배웠다. 전국 동화구연대회에서 창작인형극으로 은상을 수상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마술학원 광고지를 봤다. 인형극에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것만 배워 보여줬는데도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후 마술에 전념했다.
1년 정도 매직카페에서 일을 돕다가 2001년 경기도 안산에 마술카페인 ‘매직캐슬’을 직접 열었다. 부평과 청주에 체인점도 냈다. 2004년에는 안양에 마술학원도 차렸다. 마술교과서 4권을 출간했다. 이로 인해 2009년 ‘대한민국 지식경영 대상’에서 교육부문대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직함만 10여개다. 한국교육마술협회장, 한국기독매직협회 사무총장,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 기아대책기구 대외협력위원 겸 이사 등을 맡고 있다.
공부방 자선공연 6년, 일본 지진피해돕기 공연도
쪽방촌 아이를 위한 자선공연은 6년 정도 됐다. 처음에는 경기도 안산 공부방에서 시작했다. 기아대책기구의 안산지역회 이사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마술을 보여주거나 가르쳤다. 지금은 수도권 전역의 공부방에서 활동한다. 매월 한번씩은 미혼모, 결식아동 돕기 자선공연도 한다.
비정기적인 공연도 많다. 지난 21일엔 서울은현교회(최은성 목사)에서 일본 지진피해 돕기 자선공연을 했다. 가수 ‘여행스케치’와 ‘마로니에’, 팝페라가수 ‘스텔라’가 함께 출연했다. 연평도 폭격 피해주민을 위해, 아이티 어린이를 위해 공연도 펼쳤다. 최근 ‘꿈꾸는 다락방’ 저자인 이지성 작가와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공연도 시작했다.
함씨는 요즘 잘 나간다. 7년간 SBS 마술총감독, KBS2 수목극 ‘가시나무새’ 마술감독, 하이서울 페스티벌 마술심사위원, 국제마술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2010년 영국의 폴 포츠와 코니 텔봇 등 세계적 스타의 내한공연 때도 함께했다.
하지만 자선공연을 멈출 수 없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뒤로 안타까운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건 사라지는 것을 본 아이가 ‘아저씨, 이거 없애 봐요’ ‘책상 없애 봐요’ ‘이 집도 없애 봐요’ 하더니 나중에는 ‘아빠도 없어지게 해주세요’라는 거예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빠가 미웠던 것 같아요. 또 돈이 나오는 마술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가 많아요. 가슴이 아프죠.”
마술의 복음적 가치 전하려 월간지 발행 준비
어떤 이들은 아직도 마술사를 성경 속 ‘술객’이라며 꺼린다. 실제 술객들이 마술로 기적을 만들어 하나님의 능력인 것처럼 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의 마술은 기독교문화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칼이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마술도 같아요. 기독교 마술은 성경 이야기를 재구성해 재미있게 전달하는 문화콘텐츠예요.”
그는 마술의 복음적 교육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가칭 ‘기독매직신문’이라는 월간지 발행도 준비하고 있다.
이날은 아이들 부모인 쪽방촌 어른들도 마음껏 웃었다.
오후 7시30분 성경공부에 앞서 간단한 마술을 부탁했다. 마술사가 동전을 없앴다가 나타나게 하기를 반복하자 탄성이 터져나왔다. 마술사 몰래 점찍어둔 카드를 알아맞힐 때는 환호성이 나왔다. 40∼50대 엄마 아빠였지만 마술 앞에서는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글 전병선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