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빈민가·난민촌을 가다-(下) ‘10달러 모기장’ 생명을 구한다] 말라리아에 스러져가는 아이들

입력 2011-04-27 15:07


동아프리카의 난민들에겐, 기약이란 게 없다. 전쟁과 기근의 참혹함을 피해 국경을 넘었지만 언제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원하는 제3국행은 가능한지,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남의 땅에서 언제까지 머물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 또 아이를 낳는 동안 울타리 속, 허락된 공간 안에서 눈은 뜨고 있지만 앞은 보이지 않는 상태로 시간을 보낼 뿐이다.

살기 위해 찾아온 난민촌이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적’은 이곳에도 상존한다. 결핵을 비롯한 급성 호흡기 질환, 설사, 피부병, 위장 질환 등 각종 질병이 호시탐탐 난민을 노린다. 그중에서도 난민촌 내 사망 원인 1위인 말라리아는 난민의 궁핍한 삶 속에서 언제든 죽음을 불러올 수 있는 공포로 도사리고 있다. 지난 13∼15일 유엔재단 직원들과 방문한 에티오피아 지지가(Jijiga) 지역의 난민촌 3곳 역시 그랬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지가 시내는 은빛의 물결이었다. 대부분의 집들이 양철로 지붕을 올렸는데, 지붕마다 한낮의 태양을 한껏 반사해 내고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떠난 단발 프로펠러 경비행기는 동남쪽으로 운항한 지 2시간 만에 지지가에 도착했다. 누런 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활주로 위로 비행기가 아슬아슬하게 내려앉았다. 백인 조종사는 “3일 후에 보자”고 짧게 인사한 뒤 곧바로 이륙했다. 하늘색 양철로 벽을 댄 허름한 여객 터미널을 빠져나오는데, 담장 그늘에 모여 앉아 노닥거리던 군인들이 무심히 쳐다봤다.

코뿔소 코처럼 거대한 안테나를 범퍼에 장착한 유엔 차량이 마중을 나왔다. 차를 타고 다시 남쪽으로 40여분을 달려가니 케브리베야 난민캠프가 나타났다. 이 난민촌은 1991년 2월 5000여명의 소말리아 난민을 수용하면서 시작됐다. 이 지역의 난민촌은 한때 8개까지 늘었다가 현재는 케브리베야, 오바레, 쉐더 등 3개의 캠프가 운영되고 있다. 소말리아에서 건너온 4만600여명의 난민이 지낸다. 오바레와 쉐더는 소말리아 내전이 격화된 2007년과 2008년 차례로 생긴 신생 캠프다.

난민촌 안으로 진입하기 전 유엔 보안 담당자가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5시, 즉 해가 떠 있는 시간에만 도로 위 이동이 가능하다”고 안전 수칙을 설명했다.

문을 연 지 20년이나 된 케브리베야 캠프지만, 궁핍한 난민의 삶은 그대로였다. 난민은 난민촌 밖에서 돈벌이를 하거나 자기 땅을 갖고 농사를 짓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에 유엔난민기구(UNHCR)의 배급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캠프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인당 하루 18∼20ℓ의 물과 곡물 500g, 식용유 35g, 설탕 25g 등 말 그대로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식료품이 지급된다.

난민들은 ‘투쿨’이라 불리는 전통 주거지에서 살고 있다. 나무를 세워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개 벽면을 바른 뒤 낡은 옷가지, 종이박스 등을 여러 번 덧대 지붕을 얹는 방식의 가옥으로 네댓 평쯤 돼 보이는 좁은 공간에서 적게는 6∼8명, 많게는 15명까지 기거한다고 했다. 집 안은 창문이 없어 어두웠고, 노릿한 아프리카 특유의 냄새가 났다. 일행을 보고 몰려든 아이들의 맨발을 보며 류종수 유엔재단 상임고문이 안타까워했다.

“이 즐거운 아이들이 온갖 질병에는 무방비 상태입니다. 특히 난민촌은 모기가 딱 서식하기 좋은 곳이라, 우기가 되면 말라리아에 속수무책일 수 있어요.”

20년 세월 동안 난민 1세대를 거쳐 2세대, 3세대까지 이어지면서 난민촌은 아이들로 넘쳐나고 있다. 케브리베야 캠프의 경우 전체 난민 1만6668명 중 60세 이상이 2.8%(463명)지만 4세 이하 아이들은 13.9%(2311명)에 이른다. 캠프 내 병원 처마 밑 그늘에도 산모와 갓난아기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전통 출산도우미(TBA)에게 산후 진료를 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태어난 지 고작 2주일 됐다는 아기도 그 틈에서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남루한 유아 병실에서는 돌도 안된 무바식이 연방 칭얼댔다. 무바식은 전날 영양실조로 입원했다. 그의 엄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유니세프에서 제공한 영양제를 먹이려 했지만, 아기는 엄마의 손을 자꾸 쳐냈다.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는 없느냐는 질문에 수간호사 트세하이 마히에는 “지금은 건기라 그리 많지는 않고, 한 달에 4∼5명 정도의 말라리아 환자가 온다”며 “그러나 우기가 되면 고열 환자의 경우 무조건 말라리아 테스트부터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해진다”고 전했다. 그는 “말라리아는 간부터 망가뜨리는 데 산모와 아기는 더욱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설립된 지 3∼4년이 된 오바레, 쉐더 캠프의 풍경도 케브리베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UNHCR 직원 오드리 크로퍼드가 “난민촌 아이들은 사망해도 신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사람 수 대로 배급이 나오다 보니 부모가 종종 아이들의 사망 사실을 숨긴다는 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내에 묻는 이곳 풍습에 따라 어떤 아이들은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못 받고 그저 사멸된다는 생각에 서글펐다.

오바레 캠프 유치원 원장인 모하메드 오마르는 6월부터 본격 시작되는 우기를 벌써부터 걱정했다.

“어제 저녁에 약간 비가 내렸어요. 물이 부족한 이곳에 비가 오는 것은 반갑지만, 비가 오면 모기도 함께 옵니다. 매일 보이던 아이들이 갑자기 안 보이면 많은 경우 말라리아에 목숨을 잃은 거랍니다.”

이 캠프 유일한 의사인 파흐미 케말은 “난민촌은 환경이 열악해 말라리아 병원충을 가진 모기의 번식 우려도 크다”며 “비교적 지대가 낮고 물이 많은 에티오피아 서부와 북부의 난민촌에서는 말라리아가 매우 일상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말라리아를 완전히 퇴치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난민촌의 위생 시설을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그 전에는 모기장이 거의 유일한 방비 수단이라고 그가 덧붙였다.

UNHCR은 이런 점을 감안해 지난 몇 년간 3개 캠프의 난민들에게 꾸준히 모기장을 지급해 왔다. 유엔재단은 모기장 보급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서 ‘낫싱 벗 네츠(Nothing but nets)’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현재 ‘네츠 고((Net’s Go)’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레슬리 크리던 유엔재단 대외협력국장은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감사와 당부의 말을 전했다.

“모기장 보내기 운동은 미국 외의 국가로는 한국이 유일하게 동참하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성과를 본 뒤 다른 나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모국이 이 캠페인의 모델이라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지요. 특히 한국교회와 기독 NGO들이 적극 동참한다는 소식에 정말 감명 받았습니다. 단 돈 10달러짜리 모기장 하나면 4인 가족이 최대 5년 동안 말라리아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답니다.”

■ 네츠 고(Net’s Go·모기장 보내기 운동)

유엔재단이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낫싱 벗 네츠(Nothing but nets)’ 캠페인의 한국 버전이다. 유엔재단 한국본부는 지난해 4월 25일 세계 말라리아의 날을 맞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특수 살충 처리된 1만원(10달러)짜리 모기장을 아프리카로 보내 말라리아로부터 고귀한 생명을 지키자는 취지의 운동으로 모금된 기금은 미 유엔재단을 통해 유엔난민기구 등에 전달된다. 여러 정부 기관 및 기업, 대학 등이 동참하고 있으며, 최근 한국 기독교계로 지원열기가 확산되고 있다. 후원문의는 유엔재단 한국본부(02-554-4870·netsgo.or.kr).

지지가(에티오피아)=글·사진 지호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