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논란] 적립액 324조원 ‘큰손’으로 뻣뻣한 대기업 군기잡기

입력 2011-04-26 22:44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위원장 곽승준)가 26일 제시한 공적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대기업 견제 성격이 짙다. 청와대는 ‘미래위와 이 문제를 조율한 바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가 훨씬 더 많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미래위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경우 파장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 측근으로 통하는 곽 위원장이 이 대통령과의 교감 없이 단독으로 이러한 주장을 했다고 보는 것도 무리다. 오히려 미래위를 통해 간접적으로 대기업에 강한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곽 위원장의 기조연설을 보면 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곳곳에 녹아 있다. 대기업이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미래전략사업 발굴, 사업 혁신 등을 하지 않은 채 문어발식 확장, 과점 체제와 수직 계열화를 통한 관료적 운영, 방만한 사업 확장, 기존 시장 안주라는 부정적인 역할을 강화해 왔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경영 불투명성, 신한금융의 경영권 분쟁 등을 사례로 거론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곽 위원장은 “우리 경제는 내부에서 혁신이 일어나도록 누군가가 촉진자(Catalyst) 역할을 해야 한다”며 “기업 주주인 공적연기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이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간부들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연초에 “기름값이 묘하다”고 유가 문제를 직접 지적했고, 대기업 총수들을 만날 때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참모들은 사석에서 “경제가 어려웠지만 대기업들은 환율 덕도 많이 보고 금리 덕도 많이 봤다. 돈 많이 벌었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할 경우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공적연기금인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적립액이 324조원이고, 2043년에는 25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이건희 회장보다 삼성전자 지분이 많고, 정몽구 회장(5.17%)보다 현대자동차 지분(5.95%)이 많다.

공적연기금들이 이사회 후보 추천을 비롯한 주주제안, 주주소송, 투자자 연대, 지배구조 펀드에 운용 위탁 등 주주권 행사에 적극 나서면 대기업 판도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다만 공적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새로운 관치와 대기업 압박 논란 등의 논란이 불가피하다. 청와대가 “곽 위원장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긋는 이유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