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해외 영토 넓힌다] JP모건 등 ‘거물’과 당당히 경쟁… 펀드 수익 돋보여

입력 2011-04-26 22:25


(15) 금융 허브 홍콩에 진출한 국내 자산운용사

지난 22일 찾아간 삼성자산운용 홍콩법인은 홍콩의 금융 중심지 내에서도 ‘심장부’로 꼽히는 국제금융센터(IFC) 빌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삼성자산운용의 55층 사무실 창밖으로 뱅크오브차이나, HSBC, JP모건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금융회사들의 간판이 한눈에 보였다.

홍콩은 흔히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로 꼽힌다. 싱가포르와 중국 상하이가 아시아 금융 허브 지위에 도전하고 있지만 홍콩은 여전히 건재하다. 홍콩 정부의 금융과 세제 혜택 덕분에 금융활동이 어느 나라보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국 대륙과 연결되는 관문의 역할이 커지면서 전 세계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을 비롯해 전 세계 금융회사가 모여 있는 홍콩섬은 마천루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다. 700만명 인구가 밀집해 살다 보니 빌딩 사이가 빈틈이 없을 정도로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서 있다. 홍콩섬에 자리한 금융회사만 1800여개에 이른다.

그러나 홍콩에 진출한 한국 금융회사들은 은행과 증권, 자산운용사 등을 합쳐 30여개에 불과하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만 해도 80개 넘게 홍콩에 진출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영난에 봉착한 대다수 회사들이 홍콩을 빠져나갔다. 2000년대 후반이 돼서야 은행,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국 금융회사들이 다시 홍콩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인력을 보강하고, 상품을 다양화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회사들이 많다. 금융활동에 여러 제약이 있는 중국보다 홍콩에 본거지를 두고 중국 진출의 교두보를 삼으려는 심산에서다.

그런 면에서 최근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도약이 단연 눈에 띈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은행, 증권사에 비해 뒤늦게 진출했지만 근래 2∼3년 동안 펀드 운용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이 같은 성적표를 바탕으로 해외 투자자금 유치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홍콩에 둥지를 튼 국내 자산운용사는 삼성, 미래에셋, 한국투신, KTB 등 총 4곳. 미래에셋이 2003년 가장 빨리 진출했고, 삼성(2007년), KTB(2008년), 한국투신(2009년) 등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특히 삼성자산운용은 진출 뒤 짧은 기간 안에 성장 기반을 마련한 성공사례로 꼽힌다. 현재 중국 본토 및 홍콩시장에 투자하는 8개 펀드를 운용 중이며 규모는 75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출시한 ‘삼성 차이나 본토대표주’ 펀드는 열흘 만에 20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2009년 2월 설정된 ‘삼성 차이나2.0 본토증권’ 펀드는 운용 자금 규모는 3346억원에 이른다. 이 펀드의 경우 2008년 설정 후 지난 2월 기준으로 수익률이 무려 55.4%다. 시장 대비 16.1%의 초과 수익률을 달성했다.

최성식 삼성자산운용 홍콩법인장은 “국내에서는 펀드들이 환매 몸살을 앓고 있지만 중국 및 홍콩에 설정된 해외펀드는 꾸준히 투자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며 “2년 이상 펀드 운용 성과가 시장보다 월등하면서 홍콩 내 기관 투자가들이 국내 자산운용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성적도 화려하다. 2007년 출시한 대표 펀드인 ‘차이나섹터 리더증권’ 펀드는 홍콩에서 지난달 발표한 펀드 운용성과에서 1위를 차지했다. 6개월 수익률이 16.46%에 이르고, 1년 투자 성적은 배에 가까운 31.08%를 기록했다.

이무봉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마케팅부장은 “2년 전만 해도 홍콩섬에서 미래에셋을 아는 투자자들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면서 “운용 노하우를 묻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미래에셋은 일찌감치 진출해 기반을 닦은 만큼 해외 펀딩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대다수 증권사 또는 자산운용사가 국내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주식매매 중개나 위탁 자산 운용에 그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펀드 모집은 미래에셋이 유일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부장은 “최소한 3년 이상의 펀드 성적표가 없으면 ‘우리 펀드에 투자해 달라’고 명함도 못 내미는 게 이곳의 법칙”이라며 “국내 펀딩 자금으로만 해외 펀드를 운용하는 건 반쪽짜리밖에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자산운용 최 법인장도 “해외 펀딩을 위해 그동안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본격적인 해외 기관 투자가 유치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홍콩법인 역시 ‘그레이터 차이나펀드’를 비롯해 총 9개의 해외 펀드를 이곳에서 운용하고 있다. 홍콩 H주에 투자하는 대표 상품 ‘그레이터 차이나펀드’의 2년 수익률은 47.82%에 육박하고 있다.

오재원 한투운용 이사는 “홍콩 진출이 타 자산운용사에 비해 다소 늦었지만 18년 동안 아시아 투자 경력이 있는 렁 호와 투자책임자(CIO)를 영입해 두 자릿수 수익률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투운용은 2009년 말 외국인 투자적격자격을 획득해 지난해 초부터는 중국본토펀드도 운용 중이다. 오 이사는 “중국펀드에 대한 수요가 많아 중국에서 애널리스트를 채용하고, 지난 2월 상하이에 리서치센터도 설립했다”면서 “보다 정밀한 투자전략을 세워 더 나은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