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교도소 ‘탈레반 탈옥사건 재구성’

입력 2011-04-26 22:14

교도소 밖 고속도로 밑으로 땅굴 → 죄수 476명 4시간30분만에 탈출 → 음주·마약 교도관들 뒤늦게 경악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의 한 교도소에서 발생한 탈옥사건의 뒷얘기가 무성하다. 수감됐던 탈레반 조직원 등 무려 476명이 감방 아래로 난 길이 320m 땅굴을 통해 도망갔으니 여러 문제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내부 공범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5일(현지시간) 이번 탈옥 사건은 독창성과 조직력, 정교함이란 측면에서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1944년 나치 수용소 ‘스탈락 루프트 3’에 갇혔던 영국군 포로 76명이 땅굴을 파서 탈출한 사건과 맞먹는 기발함이라고 전했다.

사건을 재구성해 보자.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은 교도소에 갇힌 500여명의 조직원 구출작전을 세웠다. 다섯 달 전, 탈레반 대원 18명이 교도소 정반대 쪽에 있는 평범한 건물에서부터 흙을 파기 시작했다. 칸다하르 시내 서쪽에서 검문소를 지나 사르포자 교도소 내 정치범 수용소 쪽으로 진행했다.

땅굴은 아프간에서 가장 중요한 고속도로 바로 밑을 지났고, 탈레반은 이곳을 지탱하려고 철제와 콘크리트 기둥까지 사용했다. 파낸 많은 양의 흙은 화물트럭에 실어 내다 팔았다. 엄밀히 말해 ‘탈옥’이 아니라 교도소 ‘침입’인 셈이다.

24일 밤 11시. 교도소에 수감됐던 재소자들이 바닥에 난 구멍을 통해 지하 땅굴로 탈출했다. 새벽 3시30분까지 4시간반 동안 500명에 가까운 죄수들이 탈출했는데도 교도소 당국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교도관들은 나중에 이들이 남긴 죄수복과 신발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탈옥수 한 명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경비원들은 항상 술이 취해 있거나 마약을 하고 있었다”며 “그들은 당시 잠만 자고 있었고 순찰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른 탈옥수는 “땅굴은 똑바로 서서 도주할 수 있을 정도로 폭과 넓이가 넉넉했으며 전등과 환풍기까지 갖추고 있었다”면서 “충분한 산소 공급을 위해 한 번에 몇 명씩만 땅굴을 지나갔다”고 전했다.

한편 탈옥한 재소자 중 최소 65명이 다시 붙잡혔다고 칸다하르주 정부가 26일 밝혔다. 체포과정에서 저항하던 재소자 2명은 사살됐다. 아프간 정부는 “교도소 내부로부터의 협조와 조장이 있었던 징후가 포착됐다”고 밝혔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