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송주명] 일본 정부의 합리적 리더십 아쉽다
입력 2011-04-26 17:40
후쿠시마 원전이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열흘이 넘었지만 속수무책의 현실이 안타깝다. 주변지역에서 요오드와 세슘뿐만 아니라 가장 치명적인 플루토늄마저 검출되면서 방사능 공포가 일본은 물론 주변 국가들까지 엄습하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말대로 동일본이 처참하게 파괴될 가능성이 크다. 체르노빌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의 일부지역은 영구히 ‘유령도시’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양의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주변국 모르게 바다로 배출되기도 했다.
불안과 좌절 키우는 日 정부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30㎞ 내의 주민 8만여명이 대피했다. 간 총리는 21일 후쿠시마를 방문해 “원전문제를 한시도 잊지 못했으며, 모든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지만 현지 주민들은 “당신이 여기서 한번 살아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일본의 시민들은 애써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깊은 좌절감과 우울감을 표출하고 있다.
생존을 보장하라고 절규하는 ‘원전 반대’ 데모도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 민주당 정권은 미래에 대해 책임 있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 시민들도 정부를 더 이상 믿지 않는 분위기다. 국제사회도 일본 정부의 원전 사태 관리능력과 책임성에 대해 크게 회의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4월에 두 차례 제17회 통일지방선거가 행해졌다. 이 선거는 무엇보다 민주당 정권의 대지진 및 원전 사고 대책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 선거’였다. 우선 4월 10일에 도쿄도를 포함한 12개의 광역자치체(都道府縣) 지사와 4개의 시장 선거, 41개 광역의회 의원 선거가 열렸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자민당과 대결한 세 개의 지사 선거와 두 개의 시장 선거에서 삿포로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패배했다. 12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자민당이 사실상 모두 승리했다. 광역의회 선거에서도 ‘헤이세이 유신의 회’가 승리한 오사카부를 제외하고, 전국 40개 지역을 자민당이 휩쓸었다. 시민들은 민주당의 무능력에 염증을 표하면서 자민당에 ‘압승’을 안겨주었다.
한편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책임 있는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 시민들의 좌절감이 우익 민족주의의 토양을 키워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본 시민들은 엄청난 재앙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끌어 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고 있다. 미증유의 위기상황에서 일본 시민들은 민주당 정권의 무능력에 실망하면서 불안과 좌절을 돌파할 강력한 리더십을 찾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시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불과 2년 전에 우익정치로 염증을 느끼던 자민당을 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끝 모를 불안과 좌절감이 우익 정치세력의 기반을 키워주는 딜레마를 낳은 것이다. 상징적인 사건이 우익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가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된 것이다. 그는 고령과 ‘새로운 은행도쿄(新銀行東京)’에 대한 막대한 공금 투입, 올림픽 유치 실패 등 여러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위기를 돌파할 ‘강력한 지도자’로 주목받으며 4선에 성공했다.
신보수주의로 회귀해선 안돼
이렇듯 앞으로 일본 전체의 국가 리더십도 보수 민족주의자로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올 봄에도 국회의원 54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다시 참배했다. 우익 정치가들은 시민들의 좌절감에 대한 기만적 ‘대책(therapy)’으로 공격적 민족주의를 선동할 수 있다. 이 상황은 동아시아의 발전적 미래나 우호적 한·일관계에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일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신보수주의가 아니라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현재의 재앙을 보다 책임 있게 해결하고,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을 건전하게 모아갈 수 있는 합리적인 리더십이다.
송주명 한신대 교수 일본지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