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찬영 (18) 성경 보급 위해 중국에 인쇄공장 추진

입력 2011-04-26 17:32


그는 무척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 사람의 말도 믿을 수 없는데, 동양 사람인 나의 말을 과연 믿어야 할지 의구심을 갖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한번 말했다.

“일년을 기다렸는데,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

“아니, 성경 인쇄를 한다면서 왜 그렇게 작은 인쇄 기계만 생각합니까? 크게 생각하시죠. 아주 큰 인쇄공장을 하나 세워 모든 교회의 인쇄물뿐 아니라 중국인들을 위한 성경들을 많이 찍어낼 수 있으면 좋지 않습니까?”

“….”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미국 사람은 5만 달러짜리 인쇄 기계를 약속하고도 만 일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데, 한국 사람이 뭘 믿고 큰소리를 치는 거야.’

대화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 날 다시 한번 중국교회 지도자들을 만나는 기회가 왔다. “어제 말씀하신 성경 찍는 인쇄공장 얘기 가능성 있나요?”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저 혼자 모든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서공회에서 최대한 지원할 것입니다.”

“가능하다고요?” 그들은 대체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3월 초에 인도에 가시죠?”

“그렇습니다.”

“인도 가는 길에 홍콩 성서공회 사무실을 방문해 주신다면 그때까지 인쇄공장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해 놓겠습니다. 어떤 기계를, 어떻게 설치하면, 어느 정도의 성경을 인쇄할 수 있는지 등 여러 자료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홍콩에 들러 기획서를 전달받으신 뒤 인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나 어떤 합의나 결정을 하면 어떨까요?”

당시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성령이 나에게 지혜를 주셨던 것이다.

상하이로 돌아와 이곳저곳으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우선 100t의 종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알아본 결과 3월 15일까지 상하이에 도착할 수 있는 종이를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종이 대금 10만 달러였다. 당시 성서공회 지도자 세 사람이 서독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곳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

“지금 10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아니, 갑자기 10만 달러라니요?”

자초지종을 말하자 성서공회 지도자들은 당장 그만한 예산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하기를 원하신다는 부담감을 갖고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중국 지도자에게도 전화를 걸어 “성경 찍을 종이 100t이 3월 15일까지 상하이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속한 종이는 제 날짜에 상하이에 도착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교회 지도자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중국교회 지도자들은 100t의 종이를 전달받은 뒤 감사 편지를 나에게 보냈다. 그러면서 인도교회를 방문하러 가는 길에 홍콩 사무실에 꼭 들르겠다고 했다. 이에 나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인쇄공장 청사진을 준비했다. 우리가 중국 측에 처음 제안한 인쇄공장에 들어가는 성경 인쇄기는 미화로 약 500만 달러에 해당되는 시설이었다. 문제는 중국교회는 이 일을 추진하는 게 곤란했다. 원칙상 외국 단체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우리는 중국 정부의 재가를 받아 중국 기독교인이 중심이 된 사회봉사단체이자 대외 창구인 애덕기금회를 설립, 이를 통해 애덕인쇄소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성서공회는 어떤 소유권도 행사하지 않는 대신 인쇄소의 우선순위가 성경을 찍는 데 있기를 요구했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