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아버지의 기도는 내가 태어나 들은 첫 번째 운율”

입력 2011-04-26 17:39


박용묵 목사의 10만명 전도의 꿈/박상은 지음/국민일보

아버지의 기도는 태어나면서부터 들었던 세상의 ‘첫 번째 운율’이었다. 새벽이 아니면 늦은 밤, 고개가 무릎 사이로 파고들 것같이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녀들에게 익숙했다. 그런 아버지의 무릎은 영락없는 낙타무릎이었다. 얼마나 무릎을 꿇었는지 납작하게 양쪽으로 벌어져서 낙타무릎의 형상이었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하나님께 복종했던 아버지의 기도는 시간이 흘러도 자녀들에게 잔상으로 남아 신앙생활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7남매의 자녀들은 매년 설 연휴 때면 인도로 의료선교를 떠난다. 그리고 선교지에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책은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초대회장을 지낸 영파(靈波) 박용묵(1918∼1991) 목사의 20주기를 맞아 그의 5남 박상은 원장(안양샘병원)이 펴낸 회고록이다. ‘10만명 전도’를 외치며 한국부흥사 계보의 큰 줄기를 일구었던 박 목사의 일대기와 신앙관, 7남매를 세상의 빛으로 키워낸 자녀교육 이야기 등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참고 또 참아 바보같이 손해만 보는 분이셨지만 아버지는 주님 안에서 마침내 승리한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손수 가로등을 켜고 자신에게 불을 비추기보다 이웃에게 밝은 빛을 선물하기 원한 분이셨습니다.”

저자는 어린시절 부친을 따라 다녔던 부흥집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통회자복하며 회개하는 기도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응답받는 기도의 원리’를 강조했던 박 목사의 육성을 그대로 옮긴 대목이 눈길을 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응답 없는 기도는 죽은 기도요, 혼자 중얼거리는 독백이고 형식적인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외식적인 기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기도의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다만 응답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또 형제와 먼저 화목한 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응답받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 간절하고 인내하는 기도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기도의 응답을 의심하거나 낙망하여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이 끝까지 힘써 기도하십시오.”

박 목사는 복음주의에 입각한 말씀 중심의 부흥사란 평가를 받는다. 목회 성역 40년 중 30년 동안 부흥사로 사역했다. 10만명을 전도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일생동안 1000여회의 부흥회를 이끌었던 그는 ‘부흥집회’란 말보다 ‘부흥사경회’란 말을 더 좋아했다. 성경을 연구하고 그 안에서 성령과의 깊은 교제를 체험하도록 하는 개개인을 위한 부흥회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부흥사로서는 드물게 글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데 앞장섰다. 부흥회가 늘어갈수록 교재의 필요성을 절감해 ‘사도행전’ ‘바울서신’ ‘야고보서’ 등 사경교재를 비롯한 ‘사랑의 요리’라는 교재를 만들었다. 그는 1만부의 교재를 보급하고 28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박 목사는 말씀과 생활이 일치하는 목회자로 인정받았으며 1983년 대길교회 담임목사직을 조기 은퇴한 뒤에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전심전력했다. 그는 지방의 작고 약한 교회에 다녔기에 주머니를 털어 헌금까지 하고 올라오는 등 철저한 ‘자비량 선교’를 했다.

저자는 부친의 저서와 자료를 토대로 최대한 사실에 근거한 일대기를 썼다. 저자는 ‘영파’라는 말처럼 성령에 사로잡힌 종, 믿음에 사로잡힌 종, 사랑에 사로잡힌 종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영적 파도가 되어 많은 이에게 꿈과 비전으로 살아나길 소망했다.

“10만 영혼 구령이란 어마어마한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는 부흥집회를 다녀오시고 난 뒤 집회지에서 받은 결신자들의 신상을 노트에 적고 그들이 믿음의 알곡이 되도록 기도해 주셨습니다. 설교가 곧 인격이듯 아버지도 인격 전달의 통로가 설교였습니다.”

책은 한 복음 증거자의 일생을 통해 믿음 안에서 꿈꾸는 방법, 섬기는 자의 모습을 일깨운다. 영혼 구원에 뜨거운 열정을 지닌 저자의 ‘신행일치’의 삶은 현대를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