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감리교, 애산 김진호 목사에게서 길을 찾는다

입력 2011-04-26 19:51

[미션 라이프] 길을 잃은 감리교, 하지만 길 찾기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다. 법적·행정적 노력은 물론 감리교를 쇄신하려는 아래로부터의 목소리, 감리교 선배들로부터 배우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자이자 훌륭한 목회자였던 애산 김진호 목사의 글이 책으로 나온 것도 같은 이유다.

25일 오후 6시 서울 남창동 상동감리교회(서철 목사) 소예배실. 목회자들과 성도, 애산의 후손 등 3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애산의 설교집인 ‘무화과1’과 1940년대 북한 북동부 지방의 목회 경험을 적은 ‘북선전도약사’(北鮮傳道略史) 두 권의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1873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한 애산은 20대 때 상경해 상동감리교회를 맡고 있던 전덕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후 신학을 공부하고 1914년부터 상동교회에서 전도사를 시작으로 배재학당 교사, 정동교회 전도사로 사역했다. 신민회 활동, 3·1운동을 도운 혐의로 서대문감옥에 투옥되었다 풀려나 인천 내리교회, 궁정동 교회, 삼청동 교회를 거쳐 1940년 함경북도 청진지방으로 파송받아 여러 교회를 설립했다. 1947년 북한 인민공화국의 압박을 피해 월남, 1960년 88세의 일기로 소천했다. 98년엔 건국 50주년 기념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애산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와 설교를 글로 썼다. 설교와 글은 한자 중에서도 어렵다는 초서체(필기체)로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이번 책이 나오기까지는 초서->정자->한글->현대어 등 몇 단계의 번역 과정을 거쳤다는 후문이다. 한자(초서) 연구가인 조면희, 권재흥 선생 등이 번역을 담당했다. 애산이 한글 대신 한자를 썼던 이유는 일제와 공산 정권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애산은 민족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기도와 전도의 사람이기도 했다. 인천 내리교회에는 분란이 있었지만 애산이 부임하면서 전도에 집중한 결과 교인들은 6~7배로 늘어나고, 교회는 자연스럽게 정화됐다. 배재학당 교사 때는 학생들을 가르치기보다 전도하기를 즐겨해 이태원과 홍제원에서 교회를 새로 개척했다. 반면 부인이 빨래나 바느질을 통해 생활비를 벌어야 할 정도로 생활은 궁핍했다.

이처럼 애국자이자 목회자로서 큰 족적을 남긴 애산에 대해 조영준 정동제일교회 원로목사는 “오늘날 감리교회의 참혹한 현실과 위대한 신앙의 선배 앞에 사죄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며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고 신앙과 애족의 삶을 산 선배 앞에서 감리교 모든 목회자들이 회개하고 새로 거듭나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동감리교회 서철 목사는 “주님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했던 애산 김진호 목사님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김진호 목사가 되어야 한다”며 “그럴 때 감리교는 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전창희 협성대(설교학) 교수는 애산의 설교가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와 민족을 움직였다는 데 주목했다. 현재의 설교가 대부분 기독교인 개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애산의 설교엔 교회를 넘어 민족과 사회가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감리교의 뿌리는 사회를 이끌고 개혁하는 데 앞장섰다는 점”이라며 “애산의 설교집이 이런 전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만큼 후배 목회자들도 복음을 너무 교회의 언어로 머무르게 할 게 아니라 사회의 언어로 연결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애산의 저서는 후배들에 대한 감화와 도전뿐만 아니라 사료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김흥수(목원대 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은 “애산의 ‘북선전도약사’는 해방 이후 변화된 북한 사회에서 기독교의 운동과 조직을 소개하고 있다”며 “북한 교회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문서”라고 설명했다.

오세종(기독교사료연구소장, 예수원교회) 목사는 “내가 알기로는 애산의 설교집은 국내 유일의 순한문 설교집”이라며 “한국 기독교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료집인 만큼 방대한 내용을 완전히 번역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애산의 손자인 김주황 애산교회 목사가 소장하고 있는 애산의 설교는 한문과 한자가 각각 1500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1926년부터 소천 한 해 전인 1959년까지의 설교다. 이번에 번역돼 나온 ‘무화과1’은 1926~27년 2년 치 설교 70여 편을 담았을 뿐이다. 애산의 또 다른 손자인 김상면 권사는 “할아버지의 저서가 신앙 후배들에게 큰 가르침이 될 거라고 보고 남은 저서를 완역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애산 김진호 목사가 일기와 메모로 남긴 원고는 설교집 외에도 병상의 수필 ‘병중쇄록’, 한시집 ‘빙어’, 임하춘추 등 여러 권으로써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