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97)
입력 2011-04-2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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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와 손녀가 지난 화요일에 스위스로 돌아갔다. 70여일 있는 동안 손녀 [나루]도 많이 자랐고, 진돗개 한 쌍도 외견상 성견이나 진배없을 만큼 컸다. 진돗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놈들도 사위를 따라 스위스로 이주를 했기 때문이다. 젖 뗀 강아지들을 데려다가 온갖 예방 접종을 하고, 면역력 생성 유무를 국립 동물검역원에서 마치고, 그 서류를 바탕으로 스위스에다가 사전 동물수입 허가서를 요청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수차례 동물병원에 드나들며 겪은 이야기도 한 보따리는 된다. 여하간, 그렇게 해서 지난 화요일에 ‘풀롬’과 ‘미엣’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동물검역소에서 출국 서류를 받아야 하겠기에 커다란 케이지에 담긴 개를 태우고 검역소 안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갖춰진 서류를 내보이는데 불쑥 ‘진돗개 혈통 증명서’가 따라 나왔다. 그 문건을 보던 검역원이 순간 얼굴이 굳어지면서 “이 개 문화재청에 신고했습니까?”하고 물었다. “무슨 신고요? 서류를 만드는 동안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요?” “진돗개는 국외 반출을 할 때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합니다.” 일순간 우리는 모두 굳어져 버렸다. 모든 게 헛수고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으니까.
우리의 얼굴을 건너다보던 검역원이 내게 물었다. “혹시 수의사십니까?” “아닙니다. 목사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장인이며 할아버지가 됩니다.”하면서 ‘설쥐’와 ‘나루’를 가리켰다. “아니, 그럼 이 어려운 서류들을 민간인인 목사님 혼자서 쫓아다니며 갖췄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검역원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전문‘적’인 것을 민간인이 하셨다니 놀랍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스위스로 개가 나가기는 처음이고, 문화재청에 관한 문제는 우리 소관이 아니니 출국허가서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쓱쓱 서류를 준비하는데, 족히 30분은 걸리는 곳 같았다. 그러면서 연신 “이 개가 스위스로 나가는 처음 개입니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 난감한 순간에 우리를 구원해준 말 중에 섞여 있던 그 [的] 때문이다.
[的]자는 기형적이다. 이 [적]은 아무 말에나 붙어 다니면서 모든 의미를 모호하게 만든다. 마치, 여자의 앞가슴에 체면 유지처럼 붙어 다니는 브로치처럼 좀 고귀한 기생물이다. 사람들은 아무 데나 이 편리한 [的]자를 갖다 붙임으로써 연막을 치기도 하고, 유식을 포장하려고도 한다. 브리태니커 사전을 찾아보면 이 [的]은 영어의 [tic, roman‘tic’ 할 때 그 ‘틱']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of]와 같이 소유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이 낯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를 붕괴시키고 왕의 친정 형태의 통일국가를 형성시킨 근대 일본의 정치·사회적 변혁)때 어느 일본의 학식 있는 이가 그 [tic]의 음인 ’틱‘과 비슷한 [적]이란 한자를 들이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그만 본래 [tic]의 세력보다 월등한 쓰임새로 세상을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的]적으로 이야기하는 인텔리(배웠다고 하는 이들)들에게서 이 말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액세서리(accessory)가 된 언어- 참 ‘감동 tic’한 사건으로 회자될, 내가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처럼 인텔 ‘릭’( intell ‘ec’)하게 보인 탓에, 한국 역사 최초로 진돗개 두 마리가 스위스에 입양되었으니, 나야말로 [인간적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로맨‘틱’한 존재가 아닌가? 진돗개 두 마리가 레만호(찰리 채플린은 20여 년간 레만호에 머물며 ‘석양의 호수, 눈 덮인 산, 파란 잔디가 행복의 한가운데로 이끌었다’고 회고했다. 몽트뢰(Montreux), 모르쥬(Morges), 로잔(Lausanne), 제네바(Geneve)는 스위스 레만호에 기댄 도시들이다. 마을이 뿜어내는 매력은 단아하고 신비롭다. 호수 북쪽에는 예술가들의 흔적이 담겨 있고 남쪽으로는 프랑스 에비앙의 알프스가 비켜 있다. 도시와 호수 사이로는 정감 넘치는 스위스 열차가 가로지른다)를 노닐며 나눌 ‘러브 스토리’를 상상해 보시라, 내 말이 어찌 과언이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부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모할 것이로다.”(롬 11:33)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