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선물 손실도 결국 이것 때문?…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뭐기에

입력 2011-04-25 18:44


지난 2월 서울 청담동의 한 술집에서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만났다. 정 수석은 술자리 직후 국회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박영선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물었다. 정 수석은 이 자리가 고려대 동기동창 모임이었다고 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도 동석했다고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21일 주장했다.

최 회장의 1000억원대 선물투자 손실과 관련해서도 계열분리를 위한 실탄 마련이라는 해석과 함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SK증권을 개인자금으로 사들이기 위한 투자였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뭐기에 뒷말이 무성할까. 2007년 7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SK그룹은 4년간의 지주사 요건 충족 유예기간이 오는 7월 2일 끝나게 된다. 그 전에 공정거래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SKC와 SK네트웍스가 갖고 있는 SK증권 지분(30.4%)을 팔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대 180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으론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를 소유하거나 금융회사 주식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CJ그룹 역시 오는 9월 3일까지 CJ창업투자 지분을 매각하고 삼성생명 주식(3.2%)도 팔아야 한다. 이들 기업을 포함, 현재 22개 기업이 이 법 통과에 목을 매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국내 대기업들의 고질적 병폐인 순환출자 구조를 끊겠다는 취지로 추진돼 왔다. LG그룹은 2002년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삼성그룹도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놓고 고민 중이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이 에버랜드 지분을 갖고 있고,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 식의 순환출자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금산분리법(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 중 5% 초과분을 내년 4월까지 팔아야 한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반 지주회사 밑에 금융자회사를 둘 수 있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이혁재 IBK투자증권 연구원 25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금융부문의 규모가 클 경우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의무화하고 증손회사 지분율 요건도 100%에서 상장사는 20%, 비상장사는 40%로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이는 삼성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은 물론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28, 29일 전체 회의에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상정될지 불투명하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1일 “4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데 여야가 합의했고, 다만 시행 시기 문제에 대해서만 여야 간사에게 위임키로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 측은 시행을 늦출 경우 법을 어기게 되는 SK에 대한 정부의 제재 방침을 보고 결정하기로 한 것일 뿐 정식 합의가 아니었다고 즉각 반박했다. 시민단체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SK는 물론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려는 삼성, 현대차 등에 대한 특혜가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국회 때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시행 시기를 언제부터 정할지에 따라 기업들이 과징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