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임항] 다시 쇠고기를 넘어서

입력 2011-04-25 17:39


어김없이 봄이 오고 꽃이 피었지만, 지금 우리 땅 밑에서는 지난겨울 구제역으로 죽여야 했던 가축들이 부패하고 있다. 고기나 우유를 얻기 위해 키우는 짐승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동물복지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부터 매몰지의 지하수 오염을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경제성을 중시해 온 공장형 축산정책과 대규모 기업농 위주의 영농·축산정책을 장려하는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의 정신을 되짚어 보면 뭔가 모순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산업화 이전 우리나라 농촌에서 소는 논농사와 서로 순환하고 연계돼 있었다. 소는 농민 덕에 잘게 썬 볏짚과 쌀겨를 넣은 여물을 먹고 똥과 오줌을 내주면 농민은 거름을 만들어 논과 밭에 뿌렸다. 이 퇴비를 먹고 자란 벼는 사람과 소의 식량이 된다. 농민은 소로부터 에너지와, 부수적으로 고기를 얻었다. 이젠 그림이 달라졌다. 20마리 미만의 소를 기르는 농가가 1990년에는 약 61만 가구였지만, 2008년에는 15만 가구로 줄어들었다. 소농과 소규모 외양간이 사라진 자리에 값싼 유전자조작 사료에 의존하는 공장형 축산이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우리에게도 친숙해진 광경이다.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인 전희식씨는 녹색평론 3∼4월호에 기고한 ‘나는 인간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서 동물복지 논의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겨우 30개월 살다 도살장에 끌려가 죽는 소는 자연 상태에서 평균수명이 15∼20년이나 되니 사람으로 치면 열예닐곱에 죽는 것과 같습니다. 돼지는 더합니다. …대여섯 살 되는 때입니다.” “언제부턴가 축산농가에서는 ‘판다’는 말 대신 ‘출하한다’고 합니다. 사료는 공장에서 사는 원자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비좁은 사육공간 속의 소와 돼지는 ‘보조사료’라고 부르는 방부제, ‘사료첨가제’라는 항생제로 범벅이 된 사료를 먹는다. 이들 가축의 분뇨는 논과 밭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잘 썩지 않기 때문이다. 분뇨의 일부는 처분할 곳이 모자라 바다에 버려져 해양오염까지 초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하수 오염, 선진국에서의 비만, 토양 사막화, 메탄가스에 의한 기후변화까지도 공장형 축산에서 비롯된다.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축사는 냄새 등으로 인해 기피시설이 됐기 때문에 농촌에서도 자꾸만 산간오지나 상수원수와 가까운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가축이 먹는 것도 식품이라는 사실이다. 흔히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이 먹는 것이기도 하다. 한·EU FTA 협정문의 번역오류를 지적했던 송기호 변호사에 따르면 국제식품규격위원회의 유기농 기준은 유전자조작 사료로 키운 소와 돼지의 똥으로 거름을 주어 기른 것은 유기농 식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전자조작물질이 일부 들어있는 사료로부터, 혹은 공장형 농장에서 나온 똥이라도 유기농에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 또한 우리나라 식품체계는 광우병 위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미국과 마찬가지로 병에 걸려 죽은 동물의 사체를 가축에게 먹이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자연의 생산성에는 비약이 없다. 한때 녹색혁명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허구임이 입증됐다. 화학비료, 육종학, 유전자조작으로 식량 증산에는 성공했지만, 값을 싸게 만든 대신 음식의 질과 영양학적 균형을 희생시켰다. 이제 만성화된 고유가는 다시 식량 부족과 식품가격 급등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 녹색혁명이 가중시킨 토양침식과 대수층 고갈 등도 식품가격 앙등에 일조한다.

전희식씨는 소도 돼지도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곡식을 먹이자는 신토불이나 지산지소(地産地消)운동을 주창한다. 그래야 가축을 키워도 사료를 자급할 수 있는 만큼만 키우는 순환축산·생태축산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외국 농·축산물과 경쟁하는 농업을 할 것인가, 경제논리보다 농촌과 국토, 그리고 생태계와 건강을 지키기 위한 농업을 할 것인가. 결단의 시기가 왔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a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