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정태] 고개 숙인 ‘법의 날’

입력 2011-04-25 17:38

우리나라에서 ‘법의 날’이 5월 1일에서 4월 25일로 변경된 것은 2003년부터다. 근로자의 날과 겹쳐 법의 날 행사가 부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4월 25일로 잡은 건 그날이 근대적 사법제도를 도입한 ‘재판소 구성법’이 시행된 날이기 때문이다. 재판소 구성법은 갑오개혁으로 1895년 제정된 근대법률 제1호다. 1심인 지방재판소와 한성 등 개항장재판소, 2심인 고등재판소와 순회재판소, 그리고 왕족의 형사재판을 맡은 특별법원을 규정해 놓은 법이다. 이에 따라 사법권이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돼 근대적 재판기관인 재판소가 탄생한다.

1907년 고종황제의 밀사로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됐다 순국한 이준(1859∼1907) 열사는 대한제국 제1세대 법조인이다. 1895년 개설된 법관양성소를 제1기로 졸업하고 다음해 한성재판소 검사 시보로 임명돼 조정 관료들의 부패를 파헤치다 33일 만에 파면됐다. 10년 뒤인 1906년 재임용돼 평리원(고등재판소)과 특별법원 검사로 활동할 때도 부패 관료·황족들에게 법을 엄격히 집행했지만 대신들의 미움을 받아 다시 파면된다. 불의에 맞서 싸운 강직한 검사의 면모다.

대검찰청이 지난 8일 이준 열사를 재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64일간의 헤이그 여정을 재현하는 행사를 기획한 것도 그 뜻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다. 검찰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이해되지만 갈 길이 멀다. 국민이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따갑기 때문이다. 법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 등으로 사법부의 불신을 초래한 까닭이다.

어제 제48회 법의 날을 맞아 법조계가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하지만 ‘법의 지배’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정의와 공동선 실현’ ‘공정한 법 집행’ ‘공직윤리 강화’ 등을 외친 법조계 수장들의 수사(修辭)가 무척 공허하게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정의의 여신’이 상징하는 공정성과 형평성을 유지하기는커녕 일부 판·검사들은 도덕성마저 땅에 떨어졌으니 일반인에게 무슨 준법의식을 강조할 수 있겠는가.

지난해 이맘 때 ‘스폰서 검사’ 사태가 터져 검찰이 수모를 당했는데 이번에는 사상 초유의 ‘지하철 성추행 판사’ 사건이 발생해 법원이 고개를 들 수 없게 됐다. 법원이 스폰서 검사들에게 줄줄이 무죄를 선고해 법관의 윤리의식이 희박해진 것인지,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다. 이래서야 법조3륜의 권위가 서겠나.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