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찬영 (17) 1970년대 중국에 성경 전할 방법 골몰
입력 2011-04-25 19:32
30여년간 성서공회연합회에 소속된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은 중국 애덕기금회를 통해 중국 난징(南京)에 성경 인쇄공장을 설립한 것이다.
1970년대 중국 선교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죽의 장막으로 가려진 그 나라에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보낼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성서공회에서는 성경을 구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을 위해 극동방송을 청취케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적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방법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반응을 일으켰다. 중국의 많은 성도들이 라디오 앞에 앉아 성경 내용을 받아 적었다.
이 즈음 성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져다 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경 밀수꾼’이 생겨났다. 브러더 앤드루가 설립한 선교단체 ‘오픈 도어즈’가 대표적이었다. 이 단체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중국 현지에 성경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성서공회도 이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도울 방법을 강구하며 늘 기도했다. 나는 중국인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어떻게 해야 중국을 도울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던 중 직접 중국에 들어가기로 했다.
84년 1월이었다.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중국에 도착했다. 나는 중국 정부와 종교단체 관계자 등을 만났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싸늘했다. 한마디로 냉대 그 자체였다. 외국 선교단체의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 후 또 중국을 방문했지만 여전히 냉대를 받았다. 사방이 막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하나님은 포기하지 말 것을 나에게 당부하시는 듯했다. 세 번째 방문에서는 딩광쉰(丁光訓) 주교 등 중국기독교협의회 지도자들을 만나면서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기독교협의회 부회장으로서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한원자오(韓文藻)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도움이 필요하기는 합니다만….”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말이었다.
“실은 성경 10만권을 찍으려고 하는데 종이를 구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100t의 종이가 필요합니다. 종이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언제까지 종이가 필요하십니까?”
“3월 15일까지 필요합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종이 100t이라면 적어도 미화 10만 달러 이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1월이었기 때문에 3월 15일까지 종이가 중국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많지 많았다. 예산도 확보해야 하고 종이를 선적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아무리 성서공회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무라 해도 그 자리에서 10만 달러를 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대답했다.
“내일 상하이로 가는데 거기서 이것저것 알아본 뒤 이틀 내로 종이를 구할 수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중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성서공회가 아무런 조건 없이 돕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인쇄돼 반포될 수 있다면 우리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중국교회 지도자 한명이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일전에 미국에서 한 교회 대표가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필요한 만큼 인쇄하려면 지금 인쇄시설로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으니 5만 달러짜리 옵셋 인쇄기를 보내 주겠다고 했죠. 그 기계로 교회에 필요한 인쇄를 하라고요.”
“그래서요?”
“그의 말을 들은 지 만 일년이 지났지만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