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15) 김포공항 주유소 김한수 대표

입력 2011-04-25 17:44


봉사가 삶… 15년째 불우이웃 가슴에 ‘사랑의 온기’

지난 2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송죽동 만석공원에서 열린 ‘전국자원봉사 대축전’에 김한수(75)씨가 딸기상자 300개를 들고 나타났다. 농가가 저온현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들은 김씨가 딸기를 대신 팔아주기 위해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마련한 것이다. 김씨는 이 중 50개를 자비로 사서 행사에 참석한 자원봉사자들에게 나눠줬다. 김씨는 “다 같이 사는 세상인데 서로 돕고 살아야 좋은 세상이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어려운 이웃 가슴에 사랑 지피는 기름장수=김씨는 김포공항 주유소 사장이다. 1969년 한일개발(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뒤 79년부터 주유소장을 맡아 일했다. 13세 때 돌림병으로 부모를 여의고 동생 둘을 맡아 키운 터라 젊은 날의 기억은 온통 일터에만 있다. 그는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제분공장, 방앗간, 채석장 등에서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63년 군 제대 후 충남 서천에서 잡화상을 하는 양부모를 만났다. 군 복무 중 할아버지 한 분을 도와줬던 게 인연이 됐다. “당시 할아버지가 사기로 돈을 잃고 판자촌에서 살고 계셨어요. 사기꾼을 잡아 집을 되찾도록 도와줬는데 할아버지가 고맙다며 사촌동생을 소개시켜줬습니다. 그분들이 바로 양부모가 됐어요.”

김씨는 도움이 인연을 만들고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삶은 녹록지 않았다. 불량배에게 쫓겨 64년에 양부모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이후 한일개발에 입사해 수십년 동안 쉴 틈 없이 일했다.

“월급쟁이 생활이지만 그래도 경제적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으니까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다들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어려웠을 적에 누군가 조금만 도와줬으면 좀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예순살이 되던 97년에 인생을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봉사활동에 투신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첫 봉사는 기부였다. 지인이 몸담고 있던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에서 아이들에게 ‘사랑의 일기’를 보내는 사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해와 100만원씩 보탰다. 해외동포 자녀에게 일기장을 보내주려고 대한항공과 연계해 회당 300만∼400만원하는 수송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일기장을 나눠주면서 남들 돕는 일에 재미가 생겨 본격적으로 인추협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재단 내 민간자원구조단 일을 맡아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재해로 피해를 본 저소득층의 집을 수리해주는 활동에 참여했고 지난해에는 인추협 이사직도 맡아 봉사활동에 매진했다.

◇봉사가 준 새로운 삶=김씨는 지난 14년간 5억여원의 후원금을 냈다. 하지만 그는 후원금보다 몸으로 뛴 봉사활동이 훨씬 값지다고 말했다. 그는 집수리 봉사에 1000회 이상 참여했다.

몸으로 부딪쳐 봉사하며 느낀 세상은 이제껏 알아왔던 세상과 달랐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은 김씨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는 2009년 겨울,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북정동 북정마을의 이연희(86) 할머니 댁을 방문했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손자와 단둘이 지내던 이 할머니는 추운 겨울을 연탄보일러로 지냈다. 방 안이 너무 추워 손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김씨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꿔주고 기름값을 지불했다. 나중에 손자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내 일처럼 뿌듯하고 기뻤다고 했다.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이웃과 몸을 부대끼며 지낼 때 느끼는 즐거움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고령이라 현장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도움을 받은 이들의 밝은 표정과 감사하는 마음을 볼 때면 도저히 현장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가지만 봉사활동이 주는 감동 때문에 정신은 항상 젊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봉사가 주는 기쁨은 어떤 말로도 표현을 못합니다. 일단 한번 경험해보면 누구나 그 매력에 빠져들 것입니다.”

전웅빈 최승욱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