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혁명 100일] 들불처럼 번지는 민주화… ‘체제붕괴 도미노’ 진행형

입력 2011-04-24 18:26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 24일로 100일을 맞았다. 23년 독재 정권을 국민의 손으로 무너뜨린 재스민 혁명은 이후 중동·북아프리카 전역에 뜨거운 민주화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열기는 여전히 남아프리카는 물론 중앙아시아의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끊이지 않는 도전들을 만드는 ‘도미노’의 진행형이다.

◇진통 중인 혁명 열기=가장 먼저 혁명을 일궈낸 튀니지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AP통신은 최근 보도에서 튀니지가 자유에 취해 있다고 지적했다. AP는 “지난 정권에서 금지됐던 책들이 서점에 전시되고, 시위대는 가로수 길에서 매일 일자리와 정의를 외친다”고 수도 튀니스의 풍경을 그렸다. 혁명 이후 튀니지에선 50개 이상 정당이 생겼다. 하지만 국민의 전폭적 신뢰를 받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튀니지 총선은 오는 7월 실시된다.

이집트는 표면적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이나 개혁 수순을 착착 밟고 있다.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부는 최근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부자(父子)를 구속했다. 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는 9월에 치러진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장기적으로 필요한 건 재건기금”이라며 서방 지원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반정부 시위는 들불처럼 주변 국가로 번지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스와질란드, 우간다에서도 4월 들어 민주화 요구 시위가 일어났다. 지난 2일엔 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에서 1000여명이 시위를 벌였다.

집권세력은 정권 지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리비아 사태는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내전으로 이어졌다. 예멘과 시리아에선 수백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시리아는 지난 21일 48년 만에 비상사태법을 폐지했지만 반정부 세력은 여전히 정권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22∼23일 이틀간 시위에서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 120명 이상이 숨졌다.

◇세속화가 시작됐다=아랍의 변화엔 숨겨진 의미가 있다. 중동·북아프리카 국민이 자유·평등 같은 가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알라신이 아닌 믿고 따를 다른 가치가 이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독재자를 몰아낸 튀니지, 이집트는 상대적으로 세속화에서 앞선 나라들이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무슬림을 에워싸 보호한 기독교인의 모습에서 외신들은 종교 다원주의의 가능성을 봤다고 평가했다.

억눌린 아랍권 여성들이 시위 전면에 나선 점도 세속화 단면을 보여준다. 이집트 여성 리하브 아사드(40)는 “다른 여성이 확성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캐나다 일간 토론토스타에 털어놨다. 바레인에서 단식 투쟁으로 시위대의 힘을 모은 것도 여성이었다.

◇세계화가 혁명을 낳았다=위성방송과 인터넷, 휴대전화의 보급이 혁명의 밑바닥을 다졌다. 시리아 반정부 시위는 10대들이 벽에 쓴 반정부 구호 낙서에서 촉발됐다. 10대들은 위성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주변 나라에서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알게 됐다. 1996년 등장한 카타르 민영방송 알자지라는 아랍 세계에 서구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을 제공했다. 시위가 확산되는 국면에선 페이스북 등 전 세계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큰 역할을 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혁명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튀니지·이집트 같은 나라는 1980년대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주문에 따라 공공기관을 민영화하고 각종 보조금을 줄였다. 그러자 청년 실업자와 빈곤층이 급증하면서 혁명의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