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송원근] FTA, 포퓰리즘에 휘둘리다

입력 2011-04-24 19:50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국회 비준이 난항이다. 비준동의안은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예상치 않게 부결됐고, 4월 중 여야 합의로 처리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으나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당초 예정대로 7월 1일부터 FTA가 발효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문제는 비준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유럽의 거대시장에 프리미엄을 갖고 들어가는 시기 또한 늦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한·EU FTA는 작년 10월 정식 서명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아사히신문 기자가 “왜 EU의 아시아 첫 상대가 한국인가?”라고 질문한 데서 보듯 우리에게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사건이다. 협상이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되어 현 정부에서 마무리된 것 또한 여야 정치세력 간에 커다란 마찰을 불러올 사안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비준 과정이 순탄치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협정문 번역 오류 문제를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번역 오류는 공직 사회의 무사안일 등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번역 오류 때문에 FTA의 내용이나 그 경제적 효과마저 부정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비준 과정이 난항을 겪고 있는 근본적 원인은 한국 정치의 대중영합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한·EU FTA 비준동의안이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부결된 과정을 보면 우리 정치인들의 대중영합적인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FTA에 반대하는 일부 야당 의원들은 물리력으로 표결을 방해하였다. 또한 여야 간 합의 없는 날치기 통과 참여 거부를 선언한 한 여당 의원은 표결에서 기권을 했다.

중요한 사안에서 여야 간 합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시각과 이념의 차이가 있는 정치 세력 간의 합의 도달에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표결로 정책이나 법안의 채택을 결정하는 것 또한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따라서 여야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 소수 세력이 이에 대한 표결을 방해하는데도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결을 거부한다면 이는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의회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 일부 여당 의원들의 행동은 선거에서 대중의 표를 의식한 인기 영합적 정치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EU FTA 비준동의안 합의 처리를 위해 국회의원들은 정부에 피해산업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개방으로 인해 생산과 고용이 감소하는 분야는 나타날 수 있지만 어떤 분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한·칠레 FTA의 예를 보자. 당시 쟁점은 포도, 키위, 복숭아 등 과수농가에 대한 피해보상이었다. 과수산업 폐업지원금 등의 피해지원 대책용 기금은 애초 8000억원에서 비준 과정에서의 정치적 요구를 통해 1조5000억원으로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그런데 폐업지원에 2010년까지 1964억원이 투입된 복숭아의 경우는 칠레로부터의 수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키위의 국내 생산은 오히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한·칠레 FTA 피해 품목으로 지목되어 지원을 받은 과수농가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과수농가에 대한 폐업지원과 소득보전에 수년 간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지출되었다.

한·EU FTA에서도 같은 패턴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10조원이 넘는 피해지원 대책이 수립되었음에도 국회는 양도세 감면 등 축산농가에 대한 추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축산업의 경우도 FTA로 인해 EU로부터의 수입은 늘어나겠지만 다른 나라 축산물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 과연 막대한 피해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의 대중영합성으로 인해 FTA 비준 과정에서 피해산업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일은 이번에도 되풀이될 것이다. 대중영합적인 정치행위의 반복은 정치적 결과와 무관하게 막대한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송원근 한국경제硏 연구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