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原電대국 일본의 굴욕
입력 2011-04-24 19:49
한달반 전부터 세계인의 관심사는 온통 일본에 쏠려 있다. 동일본 대지진에 뒤이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로 ‘죽음의 재’ 방사성 물질이 지구 전체를 오염시킬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동해를 마주한 우리 국민과 중국인, 태평양 건너 미국인, 대서양 저편 유럽인들은 마치 하나가 된 듯 신속한 해결책을 학수고대한다.
온 세계가 난리인데 일본 내부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매일같이 사고 규모 축소에 급급하고,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내놓는 해결 방법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사고 초기 서구 전문가들이 콘크리트 밀봉을 통한 원전 완전 폐쇄를 조언하자 일본 정부는 콧방귀를 뀌었다. 미국의 원전 사고 수습 전문팀 투입도 거부했다.
외부의 도움을 거절한 채 정부와 도쿄전력이 한 일이라고는 원전 건물더미에 바닷물을 쏟아부은 일밖에 없다. 바닷물은 원자로를 제대로 식히지도 못한 채 수천 수만배의 방사성 물질을 머금고 다시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갔다. 겨우 전력은 복구됐지만 다른 제어 시스템이 고장나 냉각수는 아직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1억명의 동족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던 100여명의 ‘가미카제’식 원전수호 결사대는 방사능이 무서워 건물더미를 제대로 치우지도 못한다.
폭발한 원전을 놓고 쩔쩔매는 일본과 일본 제1의 에너지 기업 도쿄전력을 들여다보면, 왜 이 나라가 199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며 시작된 경기 침체를 2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미뤄 짐작하게 된다. 정권은 우유부단하고 기업은 현상유지에만 관심을 쏟으니 미래의 청사진이 갖춰질 리 없었을 것이다.
23일자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동화 ‘백설공주’를 일본산 식품에 빗댄 시사만화를 게재했다. 겉보기에 그지없이 정갈한 일본 음식이 사실은 독이 잔뜩 든 사과라는 내용의 이 그림은 직접적으로는 세계 각국에서 방사능 함유 의심으로 퇴짜를 맞는 일본산 식재료를 겨냥했음직하다.
불과 며칠 전 후쿠시마 원전에 처음으로 투입된 미국산 로봇은 카메라를 통해 산산조각난 건물과 틈새가 벌어진 원자로,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방사능 수증기를 자세히 촬영했다. 사고 현장은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비참했다. IHT의 시사만화와 로봇의 원전 현장 사진들을 합쳐 보면 일본의 현재와 닮아 보이는 데가 많다. 경제는 독이 든 사과를 먹은 백설공주마냥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정부는 폭파된 원전 잔해처럼 무능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