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찬영 (16) 만화성경 인도에서만 수백만권 팔려
입력 2011-04-24 17:58
‘읽히는 성경’을 만들고 싶어졌다. 글을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하나님 말씀을 알 수 없게 된다면 우리의 죄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1960년대 태국에서 성경 녹음테이프 사역을 시작했다. 덴마크인 선교사로 라디오와 대중매체를 이용한 사역을 하던 비고 소오가드와 함께 이 일을 했다.
성경을 듣게 해주는 테이프 사역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녹음테이프 전도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성경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사역을 준비했다. ‘읽기 쉬운 성경(New Reader’s Bible)’ 사역이 바로 그것이었다. 기본 취지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글을 깨우치면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쉬운 이야기부터 시작해 어려운 말씀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이를 위해 어려운 문자와 복잡한 내용의 번역을 쉽게 풀어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해야 했다. 성서공회 연합회 일꾼들이 적극 도운 결과 ‘읽기 쉬운 성경’이 마침내 탄생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말씀을 읽게 할 수 있을지 연구했다. 학생들이 학교 공부 외에는 다른 책들을 별로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토록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 시간만 있으면 만화책을 보는 것이었다. ‘옳지, 성경을 만화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학생들이 좋아하겠지.’
이에 따라 구상한 것이 ‘만화 성경’이다. 이 성경은 인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아브라함, 요셉, 다윗, 엘리야 등으로 구약시리즈를 만들고 연이어 예수님의 생애, 바울, 베드로 등으로 신약시리즈를 완성했다. 이 사역은 1970년 초기에 시작돼 아시아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됐다. 이런 접근 방법은 호응이 매우 뜨거웠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성경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 “거룩한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만화로 만들 수 있단 말이야.” “만화는 아이들이 심심할 때 재미로 보는 것인데….” “성경을 만화로 그리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에 위반되는 것이 아닌가.” 경건주의자는 경건주의에 따라, 보수주의자는 보수주의 관점에서 반대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 말씀을 알고 주께 나오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에서 이 일을 강력히 추진했다. 만화 성경은 인도에서만 수백만 권이 팔려나갔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은 물론 여러 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던 중 1977년 4월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무를 선임하는 모임이 열렸다. 그 모임에서 내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책임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아니, 당사자와 사전 상의도 없이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습니까? 기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십시오.”
나는 3주일 정도 기도에만 열중했다. 그러나 분명한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성서공회 세계총무와 미국총무 등으로부터 급하게 연락이 왔다. 뉴욕에서 세계지도자회의가 있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뉴욕회의 석상에서 만난 성서공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내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일이 있기 전 한국 성서공회 총무로부터 고국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20년 넘게 해외에서 지내 한국교회를 위해 일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고심을 했다. 결국 강권을 이기지 못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무를 맡기로 했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