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된 ‘청각세포’ 살려 소리 듣는다… 난청환자의 희망 ‘줄기세포’

입력 2011-04-24 18:02


줄기세포를 이용한 청각재활 연구가 국내에서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가톨릭대 의대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박경호 교수는 “최근 사람의 고막에서 성체줄기세포를 분리하고, 이를 신경전구체와 내이 유모세포 및 신경세포로 각각 분화시키는 데 성공해 특허를 출원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오는 5월 1∼3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리는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제85차 춘계 학술대회에서 발표되고, 세포치료 연구 분야 국제 학술지에도 게재된다. 사람의 고막에서 줄기세포를 분리, 신경세포 등으로 분화를 유도하기는 박 교수가 처음이다.

난청은 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난청 인구가 급증하는 이유다. 2009년 국민건강 영양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양쪽 귀의 청력이 40㏈ 이상인 19∼64세 사이 중등도 난청인은 전 인구의 1.5%에 불과하다. 하지만 65세 이후엔 무려 26%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한다.

난청이 발생했을 때 가장 효과적인 해결 방법은 보청기를 착용하거나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보청기는 주위의 잡음까지 증폭시켜 말소리를 알아듣기 힘들어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당기간 말소리만 선별해 듣는 적응 훈련이 귀찮아서다. 또 인공와우 이식수술은 귀 뼈를 뜯었다 다시 붙이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다 청각신경이 완전히 상실된 경우엔 소용이 없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청 치료 연구는 이 같은 보청기 착용 및 인공와우 이식수술의 불편을 덜 목적으로 시작됐다. 난청은 귓속에서 소리를 받아들여 인식케 하는 유모세포, 와우신경절 등 청각신경세포가 각종 귀 질환과 노화에 의해 손상돼 발생한다. 따라서 손상된 청각신경세포를 재생시켜 줄 수 있다면 약해진 청력의 복구도 가능하다는 개념이다.

연구는 크게 3가지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청각신경세포로 분화가 가능한 줄기세포 치료와 손상된 신경세포의 유전자를 새 것으로 바꿔주는 유전자요법, 약해진 신경세포의 유전자를 세포성장인자 등의 약물로 자극해 기능을 복구하는 치료법 등이다.

선두주자는 일본 교토대학의 주이치 이토 교수팀과 미국 하버드 의대 스테판 헬러 교수팀이다. 주이치 교수팀은 줄기세포, 헬러 교수팀은 유전자 조작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 이들은 현재 난청 동물 모델 쥐와 원숭이의 내이에 청각신경세포 중 하나인 유모세포로 분화하는 줄기세포를 주입, 신경세포를 재생시키는 데 각각 성공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선 가톨릭 의대 박경호 교수와 전상준 교수팀, 전남대병원 이비인후과 조형호 교수팀이 눈에 띈다. 박 교수팀은 특히 암 유발 위험과 생명 윤리 논란이 있는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지 않고, 제대혈(탯줄혈액)에서 분리한 줄기세포를 유모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를 진행해 주목받고 있다.

박 교수팀은 나아가 귀 속에 직접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다른 연구팀과 달리 팔뚝 혈관을 통해 줄기세포를 주사해도 내이에 도달, 청각신경세포로 분화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이 연구가 완성되면 귀를 절개하는 수술을 하지 않고도 세포 치료를 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청력 개선 효과다. 줄기세포를 주입, 건강한 청각신경세포를 증가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청력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박 교수는 “귓속 또는 혈관에 주입한 줄기세포 수가 적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능 재현에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 보완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세포 치료는 현재 청각재활 보조 수단으로 쓰이는 보청기 착용과 인공와우 이식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데도 활용이 가능하다. 난청이 청각신경세포 손상으로 발생하므로 그만큼 줄기세포를 넣어 신경세포 수를 불려주면 보청기와 인공와우의 기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세포 치료를 통해 일정 수준의 유모세포를 재생시켜주면 보청기의 효과를 높일 수 있고, 와우신경절의 신경세포 수를 늘려주면 인공와우의 효율을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