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바다의 ‘외로운 섬’ 예술의 聖地 되다… 서울 동교동 ‘두리반’ 신앙으로 지키는 유채림씨

입력 2011-04-24 17:47


2009년 12월 24일.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을 가족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며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의 일은 구역예배 교회학교 교재, 사순절 대림절 묵상집 등을 만드는 것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 조퇴를 하고 뛰어갔다. 가족의 생계 터전인 가게가 만신창이로 파괴되고 있었다. 내쫓겨 집으로 돌아온 뒤 아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대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다음날인 크리스마스 저녁, 그는 아내와 함께 가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480여일. 아직도 그는 그 안에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3분 거리인 동교동 167의 3번지 3층 건물. 본래 1층에 위치한 ‘칼국수 보쌈 전문점’ 이름이었던 ‘두리반’이 지금은 이 건물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지금 이 건물은 매주 토요일에는 ‘사막의 우물, 두리반’ 공연, 금요일에는 ‘칼국수 음악회’, 월요일에는 ‘하늘지붕음악회’, 화요일에는 다큐멘터리 상영회, 그리고 매달 한 번 ‘문학포럼’과 ‘불킨낭독회’가 열리는 젊은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됐다. 두 사람이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던 곳이 문화의 터전이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두리반 주인의 남편 유채림(51)씨는 소설가다. 한신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등단해 장편소설 ‘그대 어디 있든지’ ‘서쪽은 어둡다’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 등을 발표해 왔다. 지난해 초까지 5년여 동안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에서 출판부장으로도 일했다.

부부가 아등바등 모은 전 재산에 대출금까지 투자한 곳, 두 아들을 포함한 가족의 생계를 감당하던 가게를 달랑 이사비 300만원을 제시하는 재건축 시행사에 내줄 수는 없었다. 그마저 없이 무력에 의해 쫓겨날 뻔도 했지만 그에게는 의외의 지원군이 있었다.

먼저 작가회의 등 문인들이 나서줬다. “이 사태를 주시하겠다”는 작가들의 성명에 용역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다음으로 홍대 인근에서 활동하던 ‘자립음악’(인디) 밴드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대신 건물을 지키고 또 그 필요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기독교인들도 함께했다. 기장 총회는 사건 직후 시행사와 구청에 항의와 우려를 담은 공문을 보냈고, 이곳에서 송년예배를 드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 ‘예수살기’ 등도 꾸준히 힘을 보태고 있다.

그밖에도 지난해 7월부터 전기가 끊긴 이곳에 건전지와 초를 보내주는 시민들,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준 단체들, 그냥 여기가 좋아서 드나든다는 젊은이들, 모두 크고 작은 자원이다.

지금도 문인들은 여기저기 글을 써 두리반을 알리고, 음악인들은 공연을 하고, 기독교인들은 기도한다. 현실적인 대책은 없는 것도 같지만 이 행동들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상대방에서 보상안을 제시하고 나온 것이다. 21일 오전에는 6명으로 이뤄진 대책위원이 시행사 측 대표들과 협상을 벌였다.

유씨 부부가 원하는 보상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칼국수 가게를 다시 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여전히 제시되는 보상안은 그에 턱없이 못 미치지만 그는 반드시 이를 관철할 생각이다. 그것이 정당한 요구이기 때문이고, 최소한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개발 피해자들을 위해 하나의 선례를 남겨야만 이 모든 과정이 의미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싸움을 시작한 게 크리스마스였지만 ‘도대체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 ‘하나님의 뜻은 어디 있나’ 하는 고뇌는 처음부터 없었어요. 이미 저에게는 확고한 신앙이 있거든요. ‘닥쳐 있는 상황 속에서 신앙인답게 대처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인간의 주권을 인정하고 지켜봐 주시는 분이니까요.”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