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65) 천연기념물 왕벚나무
입력 2011-04-24 17:26
바야흐로 벚꽃의 계절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벚꽃 축제가 이미 벌어졌거나 한창인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벚꽃은 일본의 국화(國花)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 품종이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국가지정문화재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제주시 봉개동, 전남 해남 구림리 대둔산의 왕벚나무는 각각 천연기념물 159호, 156호, 173호로 우리 고유의 특산종이랍니다. 왕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 교목으로 4월쯤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데, 색은 희거나 연한 홍색을 띠지요. 한때 일본의 나라꽃이라 하여 베어지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일본에서는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았답니다. 일본 전역에 분포하는 산벚나무와 낮은 곳에서 자라는 올벚나무 사이에 생겨난 잡종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모두 근거 없는 설에 불과했지요.
왕벚나무가 한반도에서 자생하기 시작한 시기는 옛 문헌이 없어 살펴보기 어렵지만, 프랑스인 에밀 조셉 다케 신부가 1908년 4월 14일 제주도 한라산 북쪽 해발 약 600m 지점의 숲 속에서 표본(표본번호 4638)을 처음으로 채집했답니다. 이후 1912년 독일 베를린 대학의 쾨네 박사를 통해 제주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이 최초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왕벚나무의 잎은 어긋난 타원형이거나 계란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겹톱니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본은 1909년 창경궁 춘당지에 왕벚나무를 조경수로 심었고, 이듬해에는 일본 정부의 주도로 경남 진해시 도로변에 왕벚나무 2만여 그루를 심었답니다. 제주에는 1935년 당시 서귀면장이었던 김찬익이 일본산 왕벚나무를 일주도로에 대량으로 심었다는군요.
일본에서도 공원이나 학교 등에 왕벚나무를 많이 심어 왜색 시비가 일자 우리 정부는 1960년대 초 자생지에 대한 본격 조사에 나서 제주와 해남 특산종을 64년과 66년에 잇따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답니다. 왕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그 수가 매우 적은 희귀종이므로 생물학적 가치가 높고 식물지리학적 연구가치가 크다는 게 문화재 지정 이유랍니다.
잘 썩지 않고 재질이 치밀하며 결이 고운 벚나무는 예로부터 조각, 칠기, 가구, 공예, 인쇄용 등으로 사용됐답니다. 우리 국궁(國弓)의 활과 시위는 재질이 단단한 벚나무와 탄력 좋은 뽕나무가 만나 조화를 이루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려팔만대장경도 벚나무 목재로 깎았답니다. ‘악학궤범’에는 벚나무 껍질로 풀피리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지요.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곳곳에 심어져 ‘사쿠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벚꽃의 뿌리는 바로 한국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습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일본 영화 ‘사월 이야기’의 한 장면처럼 벚꽃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화사하지만 금세 지고 마는 벚꽃의 아쉬움은 환희와 몰락이 교차하는 영욕의 인생사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