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음악인생 다룬 뮤지컬 ‘어디만큼 왔니’ 오디션 현장
입력 2011-04-24 17:57
“20대 양희은의 고뇌 노래할 사람은 바로 나”
가수 양희은의 인생이 뮤지컬로 펼쳐진다.
창작극 ‘어디만큼 왔니’가 오는 7월 19일부터 8월 14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대극장에 오른다.
이 공연은 여러 점에서 화제를 모은다.
양희은 양희경 자매가 실제 본인들의 삶을 연기하는 점,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이 재연된다는 점이다.
중학교 1학년일 때 아버지를 여의고 생업전선에 뛰어든 일, 1970∼80년대 포크 가수로 생계를 이으면서 음악 세계를 구축한 일, 1980년대 투병생활을 거쳐 90년대에는 라디오, 토크쇼, 공연을 넘나드는 중견 가수로 우뚝 서기까지 세월이 그의 명곡들과 생생한 연기로 되살아날 예정.
중년 양희은의 삶은 본인이 실제로 연기를 하지만, 문제는 음악에 눈을 뜨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간 20대다. ‘아침이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 그의 명곡들이 쏟아진 시기이기도 하다. 제작사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는 그 시절의 양희은을 연기할 배우를 찾기 위해 지난 20일 오디션을 열었다. 이날 아르코대극장에서 열린 오디션 ‘젊은 양희은을 찾아라’에는 100여명이 몰렸다. 1차 서류 심사때는 1200여명이 지원했고, 이중 100명만이 오디션을 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 대극장 입구에서부터 ‘아침이슬’이 울려퍼졌다. 지원자들은 지정곡인 ‘아침이슬’과 자유곡, 지정 연기를 심사받는다. 신기하게도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날씬한 체형의 20대 여성들이 많았다. 양희은을 연상시키는 푸짐하고 넉넉한 체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지원자는 “과거 사진을 찾아보니 양희은 선생님은 날씬하더라. 외모보다는 그의 청아한 목소리를 보여주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으로는 양희은 양희경 자매, 이종일 연출, 박금선 작가, 신지아 음악감독 그리고 전유성이었다. 전유성에 대해 양희은 동생 양희경은 “이 오빠는 언니가 노래를 처음 할 때부터 지켜봐온 양반. 우리 자매를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 공연의 고문으로서 심사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언니는 20대 때 키가 크고 늘씬했다. 청바지와 남방을 입고 한쪽에는 통기타를 메고 음악다방에 들어서는 그림이 대표적 모습”이라면서 “젊은 양희은은 보이쉬하면서도, 마치 세상의 고통을 다 짊어지고 사는 고독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지원자들은 생존한 가수 앞에서 그를 연기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수연(27·여)씨는 “조금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 못했다”면서 “20대 양희은은 고생을 많이 했고 아픔 속에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소녀였다. 그 부분을 되 뇌이며 불렀다”고 말했다.
한 지원자는 ‘아침이슬’을 본래 키인 G키보다 낮은 C키로 불렀다가 된통 혼났다. 양희은은 “나는 G키로 불렀는데, 지금 C키로 부르고 있어. 본래대로 부르라”면서 바뀐 음을 족집게 같이 잡아냈다.
이종일 연출은 오디션 내내 지원자들에게 “모창하지 말고 자기 목소리로 부르라”고 강조했다. “젊은 양희은의 본질을 봐야 해요. 모창은 목소리를 꾸며낸 거잖아요. 우리가 찾는 것은 1970년대 양희은의 느낌입니다. 기본만 되면 다른 부분은 얼마든지 가공할 수 있으니까요.” 양희은의 청년시절을 말할 때 통기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지원자 중에는 기타를 갖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김선하씨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기타 연주에 맞춰 조심스레 불렀다. “기타는 언제부터 했냐”는 심사위원의 말에 그는 “2주전”이라고 답해 오디션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또한 20대 양희은 역을 뽑는 오디션인데도 출연하고 싶다는 남성 지원자들 10여명이 오디션에 참여했다. 김원준(27)씨는 “양희은 노래가 좋아서 지원했다. 그의 인생을 다룬 뮤지컬이라는 얘기에 주인공이 아니어도 꼭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디션에 합격한 남자 지원자들은 양희은과 함께 청년 문화를 수놓은 김민기(현 학전 대표) 서유석 송창식 등 한국 음악사의 주요 인물들을 연기하게 된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오디션이 6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이번 공연의 실제 주인공은 ‘제2의 양희은’이 되겠다는 젊은이들을 본 느낌이 어땠을까. 양희은은 “제 20대를 투영하는 거니까 꼭 저 같지는 않더라도 당시 저의 고민과 분위기를 가진 친구를 찾고 싶어서 지원자들을 유심히 봤다”고 했다.
“제 노래 인생 40주년을 정리하는 의미로, 제가 얼마만큼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말하기 위해 제목을 ‘어디만큼 왔니’로 정했어요. 이미 2004, 2005년에 희경이와 드라마 콘서트 ‘언제나 봄날’을 할 때 우리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든 적이 있어요. 항상 관객들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았는데, 이번 공연에서도 저희 이야기와 음악으로 관객들과 울고 웃고 싶어요.”
뮤지컬인데 춤을 추는 게 부담되지 않냐고 묻자 그는 “춤이요? 시키면 춤도 춰야죠”라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글·사진=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