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목소리·남자 보는 눈까지 똑같지만 작품 스타일만큼은 딴판이란 말 듣고 싶어”
입력 2011-04-22 17:22
나란히 장편소설 펴낸 쌍둥이 자매
이 자매, 일란성 쌍둥이다. 1976년 광주광역시에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났다. 30분 먼저 울음을 터뜨린 언니는 소설가 장은진(본명 김은진·35)이고 동생 역시 소설 쓰는 김희진이다. 2004년 등단한 은진과 2007년 등단한 희진은 각각 장편 소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와 ‘옷의 시간들’(자음과모음)을 동시에 냈다.
20일 서울 인사동에서 가진 간담회에 두 사람은 색깔만 틀린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나왔다. 외모,목소리, 성격, 취향, 심지어 남자 보는 눈까지 닮았다는 두 사람의 ‘싱크로율’(정확도와 비슷한 말)은 95%에 이른다고 한다. 은진이는 전남대에서 지리학을, 희진이는 목포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3학년 때 창작수업 과제로 단편을 쓰고 있는 동생을 언니는 질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동생은 그냥 지나가는 말투로 “너도 한 번 써봐”라고 했더니 언니는 다음날 A4 한 장 분량을 써서 건넸다. 그걸 희진의 지도교수가 보고 글발이 있다고 해서 용기를 얻었다.
언니가 등단할 때 필명을 장은진으로 쓰는 바람에 동생은 온전(?)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등단했다. 그러니 이름만 보고는 이들이 자매인 줄 모른다. 등단 초기만 해도 두 사람은 한 방에 기거하면서 긴 책상에 나란히 앉아 글을 썼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은진은 방에서, 희진은 거실에서 작업한다. 자판 두들기는 소리에도 서로 민감하게 되므로 각방을 쓰게 된 것이다.
문제는 소설에도 쌍둥이의 DNA가 흐른다는 점이다. 2009년의 일이다. 희진이 장편 ‘고양이 호텔’을 탈고할 무렵, 소설에 등장하는 고양이 200마리에게 숫자로 이름을 붙여 ‘고양이 34’ 하는 식으로 호칭하자 은진이 이걸 바꿔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마침 은진도 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에서 주인공이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게 숫자를 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희진은 언니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설정이 비슷한 장면을 두어 번 고친 터에 고양이에게 숫자를 매기는 문제까지 양보할 수는 없었다.
자매에겐 서로 닮지 않았다는 소리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그중에서도 소설만큼은 완전 딴판이란 말을 듣고 싶다. 발상이 떠오르면 미리 대화를 나누고 사전 조율을 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지 않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첫 독자가 된다는 측면에서 좋은 점도 있다. 서로 읽어주고 가차 없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은진의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는 전기와 물만 먹고 사는 여자 제이가 옥탑방에 혼자 사는 열쇠공 남자 와이의 집에 숨어들면서 시작된다. 와이의 집 전기에서 ‘쓸쓸한 맛’이 난다며 무작정 집에 들어온 여자를 와이는 옛 친구인 케이에게 떠넘기려 한다. 케이는 전기를 먹는 제이가 마음에 들고 그런 케이가 못마땅한 와이는 어떻게든 제이를 케이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소설은 제이가 어릴 적 살았던 숲 속의 집을 셋이 함께 찾아나서는 여정을 통해 현대인의 상호 소통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은진은 “인터넷에서 한 여자가 전구를 든 사진을 보고 전기를 먹고 사는 여자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희진의 ‘옷의 시간들’은 도서관 사서인 주인공 오주가 2년간 만난 남자친구가 떠나고 세탁기마저 고장 나면서 벌어지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빨래를 하려고 찾아간 빨래방에서 만난 개성 있는 여러 인물을 통해 소설은 만남과 이별을 경쾌하게 그린다. 희진은 “어느 날 새벽 두시쯤 밤길을 가다가 상가에 켜진 불빛이 고독하게 느껴졌다”며 “낯선 사람들이 모이는 24시간 무인 빨래방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그럴듯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자매는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은진은 동생을 가리켜 “에피소드가 신선하고 대사도 유머러스하다. 사유도 나보다 나은 것 같다”라고 말한다. 희진은 언니를 향해 “나보다 좀 더 문장과 구성이 단정하고 맛깔스럽다”고 말한다. 누가 알랴. 이들 자매가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쓴 19세기 영국의 여류 소설가 브론테 자매처럼 한국문학사에 이름을 떨칠지.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