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지현] 부르심

입력 2011-04-22 21:34

“아버지 어머니. 저는 이곳의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씨앗이 되어 이 땅에 묻히게 되었을 때 아마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1907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조선에 온 루비 켄드릭 선교사가 미국에 있는 부모님께 쓴 편지다. 그녀는 조선에 온 지 8개월 만에 병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그녀의 영향력은 오래 지속됐다. 그녀는 숨을 거두는 순간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회원들에게 10명, 20명, 50명씩 조선에 오라고 전해 주세요”라는 말을 남겼고, 그녀의 유언대로 20명의 청년회원들이 선교사로 속속 서원했다.

그녀가 묻힌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는 구한말과 일제 하 우리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외국인 선교사와 가족 143명이 다른 이들과 함께 안장돼 있다. 묘지공원은 1890년 7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이며 고종의 시의였던 존 헤론이 양화진에 묻히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곳엔 부활주일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을 들고 온 언더우드, 아펜젤러를 비롯해 헤이그에 가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한 헐버트, 평양의 의료선교사 홀, 양반과 천민의 신분제도 철폐를 주장한 무어 등 조선을 개화시키는 데 헌신한 분들이 묻혀 있다.

이들에게 당시 조선은 ‘땅 끝’이었다. 그들은 어떤 소명을 받았기에 목숨을 내놓고 미지의 나라에 올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모국에서의 전도양양한 앞날을 뒤로하고 세상의 변방이던 조선에 복음의 빛을 전하게 한 것일까.

그것은 부르심, 소명 때문이었다. 그들이 남긴 묘비명을 통해 그들의 필생의 소명을 엿볼 수 있다. 켄드릭은 “나에게 천 번의 생명이 있다 해도 나는 그 모두를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했고 언더우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아펜젤러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헤론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는 묘비명을 남겼다.

부활주일을 맞아 ‘우리는 어떤 소명을 갖고 사는가’를 질문해 본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소명은 시작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이란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지현 차장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