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미상모교회] “금요 철야예배가 개인 살리고 교회도 살렸어요”
입력 2011-04-22 17:39
금요 철야예배는 새벽기도와 함께 한국 교회에 신앙과 영성을 공급해온 맥이었다. 멀리 기도원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차디찬 예배당 바닥에서 그저 간절함 하나로 졸음, 추위와 맞서며 울부짖었다. 그것은 개인을 깨우고, 교회를 깨우고, 깜깜한 밤과 같았던 한국의 현대사를 일깨우는 동력이었다. 금요 철야예배가 사라지거나 변형되고 있는 한국 교회는 여지없이 활력도 방향도 잃어가고 있다. 구미상모교회는 우직스럽게 금요 철야예배를 이어오고 있는 교회 중 하나다. 김승동(64) 담임목사는 “오늘의 구미상모교회를 있게 한 비결이 바로 금요 철야예배”라고 했다.
‘금요 성령축제’란 이름의 구미상모교회 금요 철야예배는 밤 9시30분부터 시작한다. 프로그램은 특별한 게 없다. 설교는 10분, 나머지는 찬양과 기도다. 모두 김 목사가 직접 인도한다. 찬양은 김 목사가 만든 율동을 따라 뛰고 구르며 뜨겁게 부르는 게 특징이다. 기도시간은 중간에 그만두게 하는 법이 없다. 기도의 소리가 멎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다 보면 철야예배는 밤 12시, 1시를 넘기기가 일쑤다.
최근 김 목사는 한국교회 SBS사태대책위원장, 한국교회언론회 대표 등을 맡아 교회를 비울 때도 많지만 금요 철야예배만큼은 빼먹는 법이 없다. 심지어 해외 선교지 탐방을 가서도 비행기 일정을 조정해 일부러 철야예배에 참석할 정도다. 그는 “금요 철야예배는 구미상모교회의 성장 비결이자 나의 건강과 영성을 지켜주는 힘”이라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지난 2월로 구미상모교회 부임 20주년을 맞았다. 부임 때 200여명이던 제직은 지금 1400명으로 늘었다. 출석 교인은 7000여명에 이른다. 초창기엔 매달 100여명씩 등록할 정도로 ‘정신없이’ 성장했다는 게 김 목사의 설명이다. 다른 곳도 아닌 복음화율이 전국 최저라는 경북 지역에서 생긴 일이다 보니 신학생과 교계 기관의 방문도 잦다. 그때마다 김 목사는 교회의 성장 비결을 금요 철야예배 때문이라고 답한다.
실제로 금요철야로 구미상모교회에 등록하는 이들이 많다. 최종임 집사는 교통사고와 남편의 사업 실패로 힘들고 지쳐 있을 때 “구미상모교회 금요 철야예배를 가보라”는 오빠의 권유로 교회에 등록했다. 철야예배에 간 최 집사는 “예수님의 위로와 평안에 대한 목사님의 설교는 꼭 나에게 하는 것 같아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최 집사는 교회 다니면서 받은 복을 어떻게 보답할까 생각하다가 구미상모교회의 첫 기부보험 가입자가 됐다. 사망이나 보험사고 발생시 보험의 혜택을 구미상모교회에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교회를 다니다가 한때 중단했던 이수비 집사는 결혼 후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다가 최근 구미상모교회에 등록했다. 자신의 유명무실했던 신앙생활을 뉘우치고 새롭게 출발한 게 금요 철야예배를 통해서다. 지금은 임신에 성공해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구미상모교회 금요 철야예배엔 매주 700∼800명이 참석한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던 김 목사는 중학교 3학년 때 사경회차 내려온 고 김형태 목사로부터 안수를 받고 뜨거운 신앙을 체험했다. 그때부터 금요 철야예배에 푹 빠졌다. 대구와 경북 군위에서 목회할 때도 매주 금요일이면 교인들을 데리고 산을 오를 정도였다.
‘주님의 뜻이라면 아멘 하는 교회.’ 김 목사의 목회철학이자 가훈이다. 한눈 팔거나 세상 눈치 안 보고 목회와 기독교 진리 사수에 헌신해 온 데는 이 같은 신앙고백이 있었던 것이다.
목회자들의 윤리문제로 한국 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는 데 대해서는 “목사에게 예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예수 때문에 구원받고 목회자가 되어서 존경받고 좋은 차 타고 다니는데, 그 속에 예수가 없다면 사기꾼 아닙니까. 사회 환경이나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 목회자의 잘못입니다.”
구미=글·사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