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비참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입력 2011-04-22 17:25


천양희 시인 산문집 펴내

무엇이든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나이가 있다. 봄보다 가을이 좋고 가을보다 추억이 좋은 나이. 땅도 뭔가를 사랑해서 꽃을 피웠다면 인간의 꽃은 바로 ‘나이’일 것이다. 노을처럼 짙어지는 칠순을 한 해 앞둔 천양희 시인의 산문집 ‘내일을 사는 마음에게’(열림원)는 50년 가까운 시업(詩業)의 심층에 놓인 마음의 징검다리를 드러내 보인다.

책갈피를 열면 ‘고향’ ‘희망’ ‘가족’ ‘고독’ ‘평화’란 단어들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아름답지만 진부해 보이는 이들 단어의 징검다리 위에서 천양희의 솔직한 언어를 만나는 순간, 그 단어들은 진정성의 옷을 갈아입고 전혀 다른 의미로 재생산된다.

“우리 집 과수원은 낙동강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둑 하나만 넘어서면 조개잡이 돛단배가 보였고 멀리 김해비행장에서 떠오르는 비행기도 보였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는 자연을 보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이치를 일찍부터 알아버렸다. 어린 나이에 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것이 내가 느낀 최초의 고독이 아니었나 싶다.”(266쪽)

4대가 함께 살던 그의 집은 식구가 스무 명이나 되는 대가족이었다. 그 공동체에서 질서와 인내를 배웠고 가족이란 말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과수원의 포도가 익어갈 무렵 어머니가 농장 한 켠에 솥을 걸고 끓여 만든 포도주를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던 모습을 보고 자란 소녀가 문학에의 꿈을 꾼 것은 유난히 고독에 민감했던 사춘기 시절이다. 그 시절, ‘순호’라는 소년으로부터 날마다 받은 편지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탱자꽃처럼 향기로운 냄새로 기억된다. 순호의 연애편지를 받고 거울을 자주 보게 되었고 소월의 시 ‘초혼’을 외웠으며 소설 ‘테스’를 몇 번이나 다시 읽던 소녀 천양희의 문재(文才)를 처음 알아본 것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글짓기 대회에서 뽑힌 동시를 보고 ‘너는 앞으로 시인이 될 거야’라고 하셨을 때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었다. 앞으로 시인이 될 것이라는 선생님 말씀을 들은 지 15년 만에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는 대학생 시인이 되었다.”(58쪽)

이화여대 3학년 재학 중에 시인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시력 47년에 이른 경지인 지금도 원고지가 두렵다고 말한다. “시에는 불혹이 없다. 언제나 혹하는 새로움이 있을 뿐이다. 시인에게 발견은 새로운 가치다. 지금도 원고지를 대하면 원고지 사각형의 모서리가 절벽처럼 느껴져서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때가 있다.”(60쪽)

그가 등단 반세기가 되도록 시집 4권밖에 펴내지 않은 과작의 시인인 것은 이처럼 치열하게 자신의 삶과 시를 붙들고 있는 진정성 때문이다. 자신을 홀로 세우고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시간, 몰아치는 과거의 광풍을 직시하는 시간을 거쳐 그가 이룬 것은 ‘시’였다. 그런 만큼 그의 산문은 시와 다르지 않다. 어떤 일을 해도 시만큼 그 자신을 살려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간 시골 이발소에서 우연히 보았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구절이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시라는 것을 안 것은 고등학생 때였고 다시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 시 가운데 ‘마음은 내일을 사는 것’이라는 구절에 가장 매혹 당했다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산문집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단어는 ‘희망’이다. 희망이 곧 내일이라는 것이다. 내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기에, 내일을 갖는 것에는 어떠한 조건이나 자격도 필요치 않다.

“오늘이 비참하다 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직 덜 되어서, 무엇인가 더 되려고 떠도는 삶이 우리들의 서럽고도 아름다운 삶이지 싶다. 그토록 슬프고도 비참한 삶이라도 어느 순간에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라고 푸시킨은 고통 속에 있는 나를 달래주었다.”(165쪽)

천양희가 들려주는 솔직하고 내밀한 자기 고백은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청춘들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일종의 내용 증명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