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암 때문에 다시 만나는 고교 시절 ‘칠공주’… ‘과속스캔들’ 강형철 감독의 두번째 작품 ‘써니’
입력 2011-04-22 17:57
햇빛 비치는 날들,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통과한 것이 빛이었음을 알게 되는 날들. 강형철 감독 신작 ‘써니(Sunny)’는 지나간 것, 끝내 이루지 못했던 것, 때로는 생채기로 가득했던 시절에 대한 찬가다.
영화는 평온하고 부족함 없는 일상을 사는 40대 주부 나미(유호정)가 병원에서 고교 시절 친구 춘화(진희경)와 마주치며 전개된다. 암 진단을 받은 춘화의 남은 인생이 두 달 남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나미는 학교에서 ‘써니’라 부르며 몰려다녔던 나머지 다섯 명의 친구들을 찾기로 결심한다.
하나 둘 고교 시절의 ‘칠공주’들이 모이기 시작하지만 그들 모두는 30년 전과 다르다. 욕을 입에 달고 살던 친구는 교양 있는 사모님이 되었고, 왕년의 문학소녀는 생활조차 버거운 주부가 돼 있다. 우아하거나 비루하거나 상관없이 공평한 것은 모두의 청춘이 똑같이 지나갔다는 것. 패싸움을 하거나 몰려다니며 춤을 추던 아이들은 각자의 고단한 삶을 뒤에 진 중년이 되었다.
데뷔작이자 전작인 ‘과속스캔들’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코미디에 담아 넘치지 않게 표현한 강 감독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우정이 유머에 담겨 생생히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의 막장드라마들을 아울러 풍자한 장면이나 여고생 나미(심은경)가 능수능란하게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모습, ‘짱’인 춘화의 위엄에 복종하는 아이들 등이 특히 그렇다.
나이키와 민주화 시위, 교복 자율화 등으로 상징되는 1980년대의 풍경도 그 시절 10대를 보낸 이들에게 향수를 자아낼 법하다. 조덕배의 ‘꿈에’와 보니엠의 ‘써니’, 영화 ‘라붐’의 주제곡 ‘리얼리티’, 나미의 ‘빙글빙글’ ‘보이네’ 등 전편에 걸쳐 흐르는 음악들도 철저히 80년대의 그것들이다.
의욕이 지나쳐 효과를 반감시킨 부분이 물론 없진 않다. 80년대의 소녀들이 스마트폰의 존재를 예측한다거나 춘화가 고교 시절에 친구들에게 유언을 남겼다는 설정 등은 아무래도 과했다. 교복을 입어본 적 없는 나미가 딸의 교복에 집착하는 이유도 알 수 없다. 영화의 미덕을 해칠 정도는 아니나, 빠르고 임팩트있게 짜인 80년대 장면들에 비해 30년 후의 줄거리는 다소 느슨해 보인다.
10대 시절의 ‘칠공주’ 역을 맡은 일곱 소녀들은 심은경과 민효린 정도를 제외하면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한 신인이다. 전작에서 박보영과 왕석현이라는 스타를 배출했던 강 감독이 “신인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며 오디션으로 발탁한 이들이다. 감독의 말대로 성인 연기자들과의 ‘싱크로율’이 높아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 부분에서 이질감이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캐스팅이다. 앳된 얼굴로 구성지게 사투리 연기를 해낸 심은경의 연기가 눈에 띄지만,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진희경의 아역을 맡은 강소라가 될 듯. 민효린 남보라 등도 제 역할을 해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