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만의 화해’ 무산된 이인수 박사… “이승만 동상 건립과 4·19 사과는 별개”

입력 2011-04-21 18:36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80) 박사의 손등엔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 그는 “4·19 희생자의 감정의 골은 제 주름보다 훨씬 깊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51년 만의 ‘역사적 화해’가 무산된 지난 19일부터 이 박사는 살고 있는 이화장에서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21일 오후 1시30분 서울 이화동 이화장에서 만난 이 박사는 묘역에서 4·19단체 회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며 떠밀려 나왔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반세기가 지났어도 앙금은 전혀 씻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면서 “그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 박사는 느린 말투로 차분하게 화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51년 만에 사죄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그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부터 사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감정의 벽이 너무 깊어 어느 정도 아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내 나이도 여든이 됐다”고 했다.

이 박사는 직접적인 설득이 어렵다면 4·19 단체들에게 편지를 보내 사죄의 마음을 보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당장 사죄를 받아들여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4·19 단체에 편지를 보내거나 자서전 등의 글을 쓰면서 그들의 이해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는 희생자 유족들과의 접촉을 늘리기 위해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한 정기 세미나에 4·19 단체 인사를 초청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동상 건립을 위한 ‘급조된 사과’라는 주장에는 강하게 부인했다. 이 박사는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진 격”이라며 “동상 건립과 사죄는 별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수많은 학생이 희생당한 역사적 사실을 사과를 하고 싶었는데 이 전 대통령 동상 건립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오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전 대통령의 동상과 기념관 건립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 박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국민에게 심어주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의 하나 되는 힘은 정체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건국자의 사진을 기념관도 아닌 이화장 처마 밑에 걸어 놓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화장 본관 외벽엔 이 전 대통령의 사진 100여장이 걸려 있다.

이 박사는 4·19 혁명이 촉발된 것에 대해 ‘부정 선거가 이뤄지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전 대통령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3·15 부정선거가 이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비판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 박사는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단일후보로 출마해 부정선거를 지시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못 박았다. 당시 제왕적 대통령 체제에서 이 전 대통령 몰래 부정선거가 가능했겠느냐는 질문에도 “당시는 정권 말기였기 때문에 경찰력 등은 이기붕 부통령 세력에게 넘어간 상태였다”며 “이 전 대통령은 생전에도 ‘내가 세운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런 부정선거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럽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