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출사표

입력 2011-04-21 18:00

재·보궐선거 열기가 유례없이 달아올랐다. 민주당의 사지(死地)라던 분당을에 손학규 대표가 뛰어들었고, 총리가 될 뻔했던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쳐 놓은 호구(虎口)라 할 김해을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섬으로써 극적 상황을 만들었다. 엄기영 최문순 전직 MBC 사장끼리 맞붙은 강원도지사 선거도 그런 대로 흥미롭다.

그 와중에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미국을 방문해 대선 도전을 시사했다. 오 시장은 18일 보스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강의에서 대선 출마 질문을 받고 ‘우리나라가 절체절명의 분수령에 서 있는 상황에서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대답했다. 김 지사는 19일 뉴욕에서 한국언론 특파원들에게 ‘나라를 구하는 일에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 시장은 ‘부국강국(富國强國)을 만들기 위한 10년 성장론’을 폈고 김 지사는 국가안보, 일자리 창출, 복지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너무 일찍 불을 지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 터에 에두르기만 하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다. 이제는 진정(眞情)을 말해도 될 때다. 이왕이면 날을 잡아 그동안 준비해 왔을 국가경영 청사진을 펼쳐보였으면 한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한다면 낙제감이다. 여론조사에서 앞장서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두 사람에게서 어떤 자극을 받을까.

대선 잠재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 받는 것과 달리 정작 이들의 출사표(出師表)라 할 출마선언문은 소외받는다. 정식 출마를 알릴 때면 이미 후보의 정치적 실체가 알려져 있기 때문에 출마 선언은 요식 절차이기 쉽다. 게다가 국가 민족 경제 복지 따위의 허사(虛辭)만 가득해서 보는 이의 심금(心琴)을 울리지 못한다.

출사표는 신하가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아갈 때 군주에게 바치는 문서다.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 제갈량의 ‘출사표’는 내용이 충실(忠實)하고 간절하다. 나라의 장단(長短)을 짚어 뒷일을 안배(按排)하고, 선제(先帝) 유비와의 인연을 회고하여 충의(忠義)를 드러냈다.

조선 500년 동안 글을 시험하여 벼슬을 주었던 나라에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불후(不朽)의 문장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후대에 회자(膾炙)될 만한 출사표를 국민에게 바치는 후보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