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화련] 사월콩과 유월콩
입력 2011-04-21 18:01
올해는 밭작물의 수를 바짝 줄이기로 했다. 남편이 이웃 도시에 직장을 잡아 주말농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날마다 나눠 해도 벅찬 일을 주말에 몰아 하려면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것이다. 자칫하면 밭을 묵히게 생겼다. 그래서 심기 쉬운 것,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것, 병충해에 강한 것을 골랐다.
들깨, 고구마, 강낭콩, 고르고 보니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강낭콩이 특히 그렇다. 맛있고 몸에 이로울 뿐 아니라 보기도 좋다. 떡잎부터 볼 만하다. 강낭콩의 떡잎은 활짝 펼치면 검투사의 방패처럼 늠름하다. 그것들이 푸른 방패를 치켜들고 줄지어 서 있으면 어쩐지 든든하다. 열심히 해야지, 새로운 힘이 솟는다. 농부에게 힘을 주며 강낭콩이 자란다. 차근차근 꼬투리를 부풀려 탐스럽고 고운 열매를 빚는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아는 강낭콩이 하나밖에 없었다. 어릴 적 고향집에서 해마다 심던, 붉은 무늬가 있는 흰콩만 강낭콩인 줄 알았다. 그게 일반 강낭콩이고, 자줏빛 붉은강낭콩, 연보랏빛 보라강낭콩, 알이 굵고 보랏빛 무늬가 짙은 호랑이콩,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제비콩도 있다. 품종이 다양한 걸 알고 강낭콩이 더 좋아졌다. 골고루 심으려고 씨앗을 구했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살아있는 보석을 한꺼번에 손에 넣으려는 내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 심은 호랑이콩과 제비콩이 느닷없이 덩굴을 뻗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다소곳이 포기를 벌리는 콩만 보았기에 조금 놀랐지만 서둘러 버팀목을 세워 주었다.
덩굴은 자꾸만 자꾸만 뻗었다. 1m의 버팀목이 며칠 못 가 사람 키를 넘었다. 자고 나면 바꿔야 했다. 세워 놓기 무섭게 타고 오르는 덩굴손이 번번이 허공을 붙잡았다. 애처로운 그 꼴을 보지 않으려면 더 높은 장대를 구해야 했다. 줄기는 옆으로도 뻗었다. 그 움직임을 따라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덧대다 보니 인디언 움막집 비슷한 게 만들어졌다. 움막은 친친 감기는 덩굴로 나날이 튼튼해졌다. 안에 누가 숨어도 모르게 줄기와 잎이 우거졌다. 그래도 꽃은 피지 않았다.
그것들은 끝내 열매를 맺지 못했다. 버팀목이 문제가 아니라, 덩굴 강낭콩은 심는 때가 따로 있었다. 4월이 아니라 6월에 심어야 했다. 6월에 심어 초가을에 먹는 콩이었다. 줄기를 잘 뻗어 줄콩, 울타리를 즐겨 탄다 하여 울타리콩이라 부른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6월에 깨워야 하는데 4월에 깨웠으니 억지로 눈을 뜨긴 했으나 바람도 햇살도 영 낯설었던가 보다. 줄기줄기 풀어놓고 맺지 못해 그토록 허공을 부여잡았나 보다.
지난주, 봄비 그친 다음날 강낭콩을 심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땅에 한 뼘 간격으로 두 알씩 정성껏 묻었다. 이번에 심은 건 ‘사월콩’이다. 헛갈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유월콩’을 심을 자리는 둑 밑에 따로 봐 두었다. 심기 전에 둑에 그물망을 치면 호랑이콩도 제비콩도 신이 나서 타고 오를 것이다. 유월콩을 4월에 심지 않은 것만으로도 올해 강낭콩 농사는 풍작을 기대해 볼 만하다.
이화련(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