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협, 환골탈태 못하면 설 땅 없다

입력 2011-04-21 22:25

계속되는 거짓말과 변명, 경영진의 책임 회피성 발언,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전산망 관리, 고객 정보 유출, 전산망 복구 과정에서의 실책…. 신용과 보안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농협중앙회에서 3년 전부터 20일까지 벌어진 한심한 일들이다. 최악의 전산망 마비 사태가 갑자기 농협을 덮친 게 아니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농협은 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허언과 실책을 남발해 신뢰를 상실했다. 전산망 복구 시점을 지난 14일에서 22일로 번복했고, 전산망 원장 훼손 사실을 부인하다 뒤늦게 시인했다. 현재로서는 전산망이 22일 정상화될지도 미지수다. 전산 장애 명령을 일으킨 노트북이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았다는 농협 설명도 검찰 조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농협은 20일 고객 2만3000여명으로부터 신용카드 사용액보다 더 많은 돈을 인출해 물의를 빚었다. 농협은 “전산 담당자의 실수로 벌어진 일인데 부당하게 인출된 금액을 모두 돌려주기로 했다”고 말했지만 고객들의 항의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원병 회장의 언행도 이해하기 힘들다. 전산 장애 초기에 그는 “도의적인 차원에서는 잘못이 있겠지”라고 말했고, 일정을 이유로 국민들의 이목이 쏠린 기자회견을 일방적으로 끝내려고도 했다. 과연 최 회장이 전산망 마비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는지 의아스러운 대목이다.

농협의 전산 시스템 비밀번호 관리 상태는 그야말로 수준 이하다. 시스템 계정 수백개의 비밀번호를 ‘1’ 또는 ‘0000’처럼 단순하게 설정했고, 7년 가까이 계정의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이는 금융 당국과 농협의 업무 처리 지침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1월 적발하지 못했다면 현재까지 허술한 비밀번호를 유지했을 공산이 크다. 농협은 2008년 홈페이지에 있는 민원인들의 신상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는 실수도 저질렀다.

농협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도약을 꿈꾸고 있지만 되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국민 시선은 싸늘하고, 3000만명에 달하는 고객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협은 진정한 사과와 보상, 조직의 환골탈태, 신뢰할 만한 대책 마련 등의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 설 땅을 잃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