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대지진 이후 우리가 돌아볼 것들

입력 2011-04-21 18:04


동일본 대지진이 터진 지 6주가 지났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에 이어 지진·쓰나미로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수습이 지연되면서 대재앙은 아직 진행형이다. 지난 6주 동안 사태를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놀라움이었다.

차분한 일본, 흥분한 한국 언론

첫 번째는 엄청난 대재앙 앞에서 차분하게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타인 배려를 잘 한다거나, 자연재해 경험이 많아 피해 대응이 익숙하다는 등의 이유가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방사능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나타난 식수, 식량 등의 생필품 매점 사태를 감안하면 설명부족이란 느낌이다.

지난주 재난보도를 주제로 한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번 대지진 보도와 관련해 ‘차분한 일본 언론, 흥분한 한국 언론’이 주로 거론됐다. 지난달 취재차 도쿄 체류 중 느낀 바로도 일본의 신문·방송은 보도의 초점을 피해복구와 정보제공에 맞추는 한편 처참한 광경이나 유가족들이 울부짖는 장면을 애써 피했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피해자 인권이나 안전보다 사태의 정황만 따지는 우리 언론과 대비된다. 추측보도를 남발하고 과도한 속보경쟁을 계속하면 뉴스 소비자를 필요 이상으로 불안하게 할 뿐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흩뜨리기 쉽다. 우리 언론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두 번째 놀라움은 재난 및 원전 사태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 부재다. 지진 발생 1주일이 지나도록 현장에 생필품 공급이 이뤄지지 않음에도 정부가 대비책을 내놓지 못했다거나, 원전 사고가 터졌지만 사태의 실체를 은폐해 결과적으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만 도쿄전력 및 일본 정부의 미흡한 대응이 놀라울 뿐이다.

공교롭게도 이 문제는 일본 뉴스매체의 소극적인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의 재난보도 지침이 주로 정부 측 자료를 가감 없이 인용하는 데 그치고 재난 현장 지원 미흡, 원전 사고 수습 지연 등을 문제 삼아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의 바람직한 역할을 거듭 생각하게 한다.

지역공동체의 리더십 부재도 놀라웠다. 이번 지진·쓰나미는 피해지역의 주민뿐 아니라 말단 행정조직까지 한꺼번에 피해를 입힌 탓에 이재민들을 돌볼 행정력이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보통은 지역 내의 연장자나 장년들이 리더십을 발휘하기 마련이지만 현장은 그렇지 못했다.

부품 공급체계 재검토해야

세 번째는 글로벌 공급체계(GSC·global supply chain)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위력이다. 지진이 발생한 도호쿠(東北)지방은 일본 GDP의 7% 정도를 감당하지만 이 지역에 있던 전자, 자동차 분야 부품공장의 가동 중단은 곧바로 세계제조업에 파문을 일으켰다.

예컨대 연 매출 약 1400억엔(1조8400억원)인 중견 화학메이커 ‘크레하’의 경우 리튬이온 2차전지의 접착제로 사용되는 고기능수지 KF폴리머의 세계시장점유율이 70%나 된다.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 있는 공장이 이번 지진으로 가동 중단된 상태다.

미야기현 센다이시 소재의 무라타(村田)제작소는 휴대전화 등에 들어가는 표면파(表面波) 필터 생산에서 세계시장 40%를 점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과 관련된 실리콘 집적회로기판의 경우 후쿠시마현 소재의 신에쓰(信越)화학과 야마가타현의 숨코(SUMCO)가 세계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일본의 부품산업이 멈추면 세계의 제조업이 흔들린다는 게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일본으로부터 부품 등 자본·중간재를 매년 수백억 달러씩 수입하는 한국으로서는 심각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부품공급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대재앙의 메시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