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홈리스시설 종사자학교에 가보니… “상처받은 이웃 홈리스 트라우마 치유부터”
입력 2011-04-21 17:29
“혼자 아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쳐 주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국홈리스연대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선교훈련원이 공동 주최한 ‘2011 홈리스시설 종사자학교’가 19∼21일 대전 성남동 대철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전국의 홈리스 관련 기관 28곳에서 참석한 40여명의 종사자들이 모여 교육받는 자리였다. 정신과 전문의 김준기 박사의 ‘트라우마’ 강의가 큰 호응을 얻었다.
김 박사는 홈리스들에 대해 ‘복합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살아오면서 겪은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못하고 부적절하게 계속 자극을 줘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평소 가까이서 돌보고 함께 생활하면서도 홈리스들의 정신 및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던 종사자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흔히 트라우마를 전쟁 테러 자연재해 강도 고문 학대 성폭력 유괴 등 커다란 사건을 겪는 데서 비롯되는 심리적 상처로만 알고 있지만 김 박사는 “개인 성향과 나이에 따라 작은 일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소 과묵했던 아버지에게 뺨을 맞거나, 축구경기에서 자살골을 넣은 일, 화상 치료를 고통스럽게 받은 일 등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어린 나이에 겪을수록, 큰 사건일수록, 오래 지속될수록 트라우마 효과는 훨씬 부정적이고 광범위하다”면서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치유되지 않고 뇌에 봉인된 채로 남아 있다가 훗날 특정 상황에서 정신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사회생활을 잘하다가 하나의 사건으로 갑자기 알코올중독이 되거나 집을 나가거나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면서 김 박사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현재 안전을 확인해주는 일, 즉 ‘울타리 쳐 주기’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까이서 지켜보고 무조건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사람은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의 후 참석자들은 “상대의 가족문제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하느냐” “트라우마를 섣불리 들춰내면 오히려 위험하지 않느냐” 등 질문을 쏟아냈다. 김 박사는 “지속적인 관계로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고, 작은 상처부터 단계적으로 대면하게 해 줘야 한다”고 답했다.
서울 영등포동 햇살보금자리 상담보호센터 배준호 사회복지사는 “치유와 상담에 대해 더 공부해 보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홍제동 여성 노숙인 쉼터 ‘열린여성센터’의 서정화 소장은 “왜 홈리스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비로소 실마리를 발견했다”고 만족해했다.
대전=글·사진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