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예수께서 받은 세례는 ‘또 하나의 십자가’
입력 2011-04-21 17:59
예수님은 ‘두 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한번은 골고다 언덕에서, 또 한번은 요단강에서. 의아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때 예수님과 세례 요한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세례 요한은 절대로 예수님께 세례를 줄 수 없다 하고, 예수님은 꼭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주장하십니다. 공관복음서 중에서 오직 마태복음에만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3:13∼15). 예수님이 세례 받았다고 하면 혹 예수님에게 죄가 있는 것으로 오해할까 염려되어서 마태가 이 이야기를 기록한 듯합니다.
세례는 죄인들이 회개하는 표시로 받는 의식입니다. 세례 요한은 무리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설교했고, 그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도 없고, 응당 세례를 받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 베풀기를 망설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설득해서 굳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인이 아니지만 죄인과 같이 되셨습니다. 죄인들 틈에 들어가서 죄인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죄인이 아닌 예수님께서 죄인과 똑같이 붙잡혀서, 죄인과 똑같이 판결을 받으시고, 죄인과 똑같이 형벌을 받으신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세례도 역시 십자가와 똑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것을 또 하나의 십자가를 지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짊어지신 십자가는 하나이지만 영적인 의미에서는 두 개의 십자가가 있는 셈입니다. 하나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것이고, 또 하나는 요단강 물속에 세워진 것입니다. 세례 받은 것이 공생애의 처음에 지신 십자가라면 고난 받은 것은 공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십자가입니다.
실상 예수님의 생애 전체는 ‘물속의 십자가’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십자가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기꺼이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었고, 병들고 가난하고 따돌림당하는 사람들을 끌어안았습니다. 하늘 보좌, 가장 높은 곳에 계시던 분이 가장 낮은 곳, 밑바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생애는 십자가의 연속입니다. ‘물속의 십자가’에서 시작하여 ‘언덕의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십자가에서 십자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가요? 죄인이면서 의인인 척하고, 자기 혼자만 옳은 것처럼 쉽사리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며, 교만과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과는 멀어도 한참 먼 모습입니다.
십자가는 골고다 언덕에만 세워져 있는 게 아닙니다. 가정과 직장과 동네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가 많이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요? 과연 우리 삶의 한복판에 ‘물속의 십자가’가 우뚝 세워져 있는지요?
오종윤 목사 (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