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30년’ 펴낸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입력 2011-04-21 17:44


“베스트셀러는 시대의 리트머스 종이”

한기호(53·사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우리나라 현대 출판의 산증인이다. 1982년 출판계에 편집자로 입문한 그는 이듬해 ‘창작과비평’(현 창비)으로 옮겨 15년 동안 출판 마케터로 활약하며 ‘소설 동의보감’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편집자와 마케터에 이어 출판기획자와 평론가로 변신한 그는 98년 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한 뒤 곧바로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창간했고, 지난해 3월에는 한국 최초의 민간 도서관 월간잡지 ‘학교도서관저널’을 펴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 소장이 2년에 걸친 집필 끝에 1981∼2000년 한국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재조명한 ‘베스트셀러 30년’(교보문고)을 펴냈다. 그는 2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베스트셀러를 통해 한국출판의 거대한 흐름을 짚어보고 싶었다”면서 “30년간 출판계에 종사하면서 이제야 작은 산 하나를 넘은 기분이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 출판역사를 인물이나 사건 중심으로 정리한 책은 있었지만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정리한 책은 드물었어요. 베스트셀러만큼 당대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도 드물거든요. 30년 통사를 써보니 베스트셀러는 마치 리트머스 종이처럼 우리사회의 변화를 정확하게 감지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은 81년부터 매년 종합 베스트셀러 10개를 선정하고 책마다 설명을 싣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이어 해마다 베스트셀러 흐름과 사회적 의의를 분석하고 이를 다시 10년마다 단락을 구분해 시대적 큰 흐름을 살폈다. 한 소장은 80년대를 ‘이념의 시대이자 불의 시대, 시와 대하소설의 시대’로 구분했고 90년대를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수위가 고조되던 시대’로 규정했다. 2000년대는 ‘절대고독의 개인이 발견되는 여정의 시대’로 정리했다. 여기에 신경숙이나 이문열, 이외수, 이해인 등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출간에 얽힌 이야기 등을 더해 책의 흥미를 더했다.

한 소장은 80년대 베스트셀러 목록을 집계하고 이를 모두 다시 읽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90년대부터야 제가 책을 잘 아니까 감을 잡을 수 있었지만 그 이전에는 웬일인지 베스트셀러 관련 자료가 거의 없어 애를 먹었어요. 아마 베스트셀러를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렵사리 베스트셀러 목록을 정하고 책을 전부 읽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지요.”

한 소장은 독서인구의 감소와 ‘반값도서 할인’ 같은 유통질서 문란이 이어지면서 우리 출판문화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면서 베스트셀러만 팔리고 나머지 책은 대부분 도태되고 있다. 여기에 인터넷 쇼핑몰 등을 중심으로 한 파격할인으로 건전한 출판문화가 망가지고 있다”며 “독자들이 보다 다양한 책을 폭넓게 읽는 문화가 형성돼야만 출판계와 우리 사회가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상기 기자